결과 보단 과정이 즐거운 팟캐스트 녹음

by 알레

오랜만에 팟캐스트 녹음을 다녀왔다. 그 말인즉슨 실로 오랜만에 아침 일찍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단 소리이기도 하다. 목적지인 역삼역에 도착하니 이미 체력이 다 소진된 기분이었다. 열차 안에서 밀도 있는 이동 덕분에 허리도 당기고 허벅지 근육은 벌크업 된 것 같다. 그래도 일찍 도착한 덕분에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과 베이글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역시 속이 든든한 게 최고다. 속이 든든하면 기분도 좋아진다.


거의 4개월 만에 스튜디오에 간 것 같은데, 3년 만에 처음으로 길게 쉬었더니 세상 어색했다. 다른 무엇보다 어제 음악을 선곡하는데, 도통 떠오르지 않아 곤욕스러웠다. 더욱이 근래에는 AI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나 앰비언트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팟캐스트에서 소개할 만한 음악이 딱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음악을 선곡하는 시간이 마치 밀린 숙제를 할 때처럼 더디게 흘러갔고 그 탓에 이전과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없었다. 준비가 끝날 무렵 두 곡 정도 남기고는 스케줄 약속을 했으니 마지못해 준비하는 듯 한 마음까지 올라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번 녹음을 마지막으로 할까'하는 생각마저 들정도였다. 아무래도 요즘 피로감이 누적되어 더 그랬던 것 같다.


익숙한 동선을 따라 걸으며 늘 머물던 장소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는데 어쩐지 익숙한데 낯선,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잘 믿지는 않지만 나도 은근 낯을 가리는 사람이다. 아무리 3년 가까이 드나들던 공간이어도 4개월의 공백은 낯선 공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괜스레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 오늘 어떤 말을 나눌지 준비한 것들이 잘 떠오르지 않아 자꾸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나를 보면서 첫 녹음을 할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완전 수다 방송이 되었지만 처음엔 나름 음악 방송처럼 진행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거의 밤을 새워 자료를 조사하기도 했다.


벌써 3년을 했는데 몇 달 쉬었다고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도 좀 웃기긴 했지만 처음의 긴장감을 다시 느껴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막상 피디님을 만나고 나니 4개월의 공백이 무색해질 만큼 편안한 대화가 오갔다. '어색함, 낯섦은 개뿔.'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는 음악과 함께 수다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실상 음악을 거의 안, 아니 못 듣는다고 봐야 할 정도로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오랜만에 게스트도 없어서 너무 빨리 끝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정말 쓸데없는 기우를 넘어 뇌 용량의 낭비였다. 오히려 음악과 음악 사이의 텀이 길어지는 듯해서 대화의 길이를 조절했어야만 했다. 하기사. 내가 언제 팟캐스트 녹음을 하면서 오디오가 비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말 괜한 걱정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큰 틀에서, 그냥 큰 틀이 아니라 우주만큼 큰 틀에서 봐야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즉흥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1시간 20분이 지났다. 다시 말하지만, 어젯밤 준비하면서 괜한 걱정을 했다.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팟캐스트는 여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도 지금껏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분히 즐거움 때문이다. 스튜디오에 앉아 녹음을 하고 있는 그 순간을 좋아하기에 지속할 수 있었다.


인생에 하나쯤은 결과와 상관없이 좋아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 시간만큼 힐링이 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시간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문득 잠깐이었지만 그만할까 생각했던 어제의 나 자신이 낯설어진다. 다음 녹음에는 오랜만에 게스트를 모셔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