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삶을 돌아보면, 시간의 자유를 얻었고, 공간의 자유를 얻었으며 마음껏 꿈을 꾸고 공상에 젖어도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니 디테일은 묻지 않기로 하자. 지난 5년의 절절함은 1000개의 글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인생은 언제나 돌아보면 신기한 것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갈 줄 과거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선택을 해석해 보면 굳이 오늘의 삶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할 수도 있겠지만 99%는 계획과 무관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문득 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는 지금도 말문이 막힌다. 늘 꿈을 명사 형태로 생각해 버릇했더니 40대에 떠오르는 명사가 없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심지어 얻어걸리는 뭐라도 없다. 그런데 명사가 아닌 동사 형태로 떠올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부단히 고민했지만 늘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해 시무룩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실상 난 이미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결핍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이다. 아마 이건 평생의 숙제로 안고 살아가야 할 듯 보인다.
생각해 보면 그리 거창한 삶을 바란 적이 없다. 가족 간에 큰 일 없이 잘 지내고, 건강하게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내 아이 곁에 언제나 머물러 줄 수 있는 아빠이길 바랐고, 창작자로서의 걸음을 걷고 싶었다.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선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길 바랐고, 아이가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라길 바랐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길 바랐고,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길 바랐다.
돌아보면 이미 다 이루어진 삶이다.
나에게 꿈을 이룬다는 건 더 이상 어떤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추구하는 삶의 방향으로 향해 가는 여정이 되었다. 그 여정 중에 있다면 이미 나는 꿈을 이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내게도 욕망이 있고 욕심이 마음을 앞설 땐 낙심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보니 배우게 되는 건 들쭉날쭉한 감정조차도 삶이라는 여정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었다. 경험하는 감정을 통해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고 나를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으니 어쩌면 꿈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에 비교해 보면 대부분 내 삶의 모자란 것들만 보였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되려 이미 가지고 있어서 당연한 것이 돼버리는 순간 감사가 사라지고 더 나아가 자존감 마저 손상을 입게 된다는 걸을 알았다. 당연히 더 이상 꿈이 보이지 않게 된다.
꿈꾸는 삶을 살고 싶다면, 꿈을 이루고 싶다면 가장 먼저 돌려야 할 것이 나의 시선이다. 온통 바깥으로만 향해있는 시선을 나의 중심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계속 경로는 이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무엇도 하찮은 시작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하찮지 않은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고, 하찮을 수 없는 행동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거창한 꿈을 이루겠다면서 정작 나 자신을 가장 하찮게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자.
어쩌면 우리는 이미 꿈꾸는 자리에 서기 위한 길이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 시작점이 끊어진 걸 모를 뿐.
이제는 나의 꿈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한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나누며, 흘려보낼 수 있는 통로로 살아가는 삶. 그 마음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지으며 또한 음악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