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세이를 쓰기로 했습니다.

- 육아 아빠의 소소한 기록

by 알레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담아 에세이를 쓰는 것을 '업세이'라고 한다면 육아의 만감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이 곧 '육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빠가 된 지 오늘로 468일. 오랜 시간 간절히 바랬던 만큼 함께하는 기쁨은 이로 말할 수 없지만 육아에 어디 기쁨만 존재하겠나.


처음 이 매거진의 제목을 생각했을 때, '육아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류의 타이틀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한 참이 지난 어느 날 동료 작가님이 채팅 중에 던진 한 마디, '육세이'를 보며 얼른 주어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그렇게 탄생한 매거진, '육세이를 씁니다'에는 모든 것이 처임이어서 서툰 아빠의 시선을 담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그 첫 번째 이야기를 기록해본다.





사람이 그리워 미치도록 외로운 한 사람.


바로 얼마 전 동료 작가님의 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스타벅스에 모인 엄마들을 바라보며 쓴 글 속에 담겨있던 문장이었는데 이 문장이 내 가슴속에 훅 들어와 글을 쓰게 만들었다. 육아를 하며 가장 많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바로 이 한 문장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난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하릴없이 앉아 시간만 때우다 집에 가는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었다. 평일에도 회사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육아를 전담시키면서 주말까지 굳이 회사에 나와 아빠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책임회피는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것만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고 싶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전에는 정말 24시간 육아가 풀가동되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일단 밤 잠은 길게 잔다는 것이다. 사람들 말이 밤에 잘 자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하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이라는 생각으로 초반 몇 시간은 견딜만하다. 그러나 슬슬 장난감도 지겨워지기 시작한 아이가 이 방 저 방 기어 들어가 전기 코드며 굳이 먼지가 쌓인 책상 밑 어느 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하면 아빠는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참 희한한 것이 그런 상황이면 아이는 더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마치 이 모든 상황과 아빠의 상태를 다 알고 의도적으로 약을 올리는 듯 행동한다.


나는 점점 내 아이가 말도 못 하는 아기가 아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격체로 여기며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참 못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아이가 알아들을 리가 만무한데도 그저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을 토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한 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직장은 별로였지만 동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언제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에게 이성적인 대화, 어른들의 일반적인 대화는 삶의 피로 회복제와도 같다. 그런 나에게 코로나 시대의 육아는 채워지지 않는, 풀리지 않는 갈증을 증폭시켰다.


아내가 출근한 오늘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야외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엄마들을 보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던 난 어쩔 수 없는 육아 아빠인가 보다. 그 아침 어떤 대화들을 그리 재밌게 나누고 있었을까 싶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들만의 시간에 무슨 얘기인들 즐겁지 않을까.


육아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어떤 것들로 다시 채워진다. 무엇보다 아기가 '아빠~'를 외치며 안아달라고 두 팔을 쭉- 내밀 때는 헛헛했던 마음은 순간 꽉 채워짐을 느낀다. 그렇게 아이와 또 하루를 쌓아가는 나는 영락없는 육아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