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정리 3일 만에 깨달은 것

by 알레

'이게 이렇게 금방 끝날 거였나?' 조금은 허탈하고 동시에 마음먹은 걸 해낸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늘 이고 지고 사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데 3일도 안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1시간도 안 걸린 셈이다. 하루에 고작 10여 분 정도만을 정리한 것뿐이니. 버릴 건 버리고 서랍에 넣을 건 넣고 나니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려 대체 왜 이걸 그렇게 미루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운한 마음으로 정돈된 공간을 둘러보는데, 왜인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은 이 기분이 드는 건 뭘까? 아! 그랬다. 나는 중요한 걸 깨달았다.


아내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다. 7년을 연애했고 11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함께한 세월만 치면 이미 20년 가까이 된 커플이다. 그만큼 서로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연애하는 내내 웃는 모습이 닮았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다. 원래 연인끼리는 서로 닮아간다고 하지 않은가. 이번에 깨닫게 된 건 우리가 사는 모습도 참 닮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우선 우리 부부는 잘 버리는 성격이 아니다. 버리지 못함의 이유가 약간 차이는 있다. 나는 그저 귀찮은 거고 아내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는 성격이라 그렇다. 그나마 우리가 큰맘 먹고 정리를 할 땐 이사를 할 때였다. 신혼 때부터 우린 거의 1년에 한 번씩 이사했다. 다분히 우리의 선택 때문이지만 그 덕분이라 해야 할지 그 탓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때가 한바탕 정리를 하는 유일한 시기였다. 이제는 이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있으니 짐만 더 늘어났다.


두 번째로 그동안 일상 속의 정리는 비우는 게 아니라 현상 유지였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전에 살았던 아파트는 신축이라 그런지 크기는 작아도 수납공간은 많았다. 덕분에 이곳저곳 잘도 넣어뒀다. 지금 집은 오래된 아파트라 수납공간이 현격히 부족하다. 이곳에 이사 올 때 수납함에 잘 숨겨놨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정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 또 그 덕이라 해야 할지 그 탓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집에 옷 방과 서재의 바닥은 겨우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여유밖에 없는 이유다.


세 번째로 내 옷이 우리 집 물건에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0%, 아니 5%로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매일 10분씩 3일이면 끝날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러니 정리해도 티가 안 나지. 문득 군대에서 청소할 때 자주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야, 그거 다 안 보이게 짱박아!' 그렇다. 정리의 진리는 여백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옷 방과 서재 방의 여백이 드러나려면 결국 바닥의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부터는 아내와 나의 공동 지분이니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사회를 열어야만 한다. 대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사실 그동안 아내에게 정리에 대한 필요성을 간간이 설파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때마다 잔소리로 들렸는지 늘 답은 한결같았다. '알겠으니까, 자꾸 쪼지 마.' 아마 나의 전달 방식이 잘못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땐 나도 정리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못했다. 그땐 그저 쉬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이제 집이 나의 생활공간이면서 작업 공간이 되니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이 답답해지니 공간이 주는 압박감도 한몫했다.


그때부터 정리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그러나 아내도 나도 매일 육아와 삶으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반복적으로 건네었던 말이 아내에겐 부담을 넘어 압박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이번에 3일 동안 내 옷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건 조금씩 매일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하루 10분만, 아니 하루에 딱 10개만 정리하는 식으로 가볍게 시작하면 어느 날 눈에 보이는 변화가 느껴질 거고 그때 그 느낌을 쭉 이어가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아내를 설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부드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오늘부터 나의 사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마케터가 되어야겠다. 가장 까다로운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그나저나,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