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버리는데 순간 울컥할 뻔했다

by 알레

'오늘은 신발장이다!' 매일 정리하기 4일 차. 신발장에 눈길이 갔다. 옷장과 마찬가지로 신발장도 그동안 정리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늘 지나쳤던 곳이었다. 신발장 정리도 역시 20분 정도면 충분했다. 우선 나는 신발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한 번 신을 때 주야장천 한 가지만 신는 버릇이 있어 한눈에 버릴 것과 남길 것이 구분되니 정리가 쉽다.


우선 내 것을 죄다 꺼내 바닥에 놓고 남길 것들에게 새 자리를 배치해 줬다. 나머지 빈 공간에는 아이의 신발들을 넣고 아내 것도 위아래 훑으며 가지런히 정리하니 예상했던 대로 정리는 금방 끝났다. 일단 정리 상태에 대한 인증숏을 남기고 버려질 신발들을 비닐봉지 안에 한데 모았다.


비닐봉지 안에 넣기 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들을 바라보는데 순간 마음 한편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옷을 정리할 때와는 달리 신발은 마치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기분이 컸다. 그럴만한 게 옷은 한 철 입을 목적으로 구입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부터 오래 가지고 있을 계획은 없었던 것이니 버리는데 아무런 감정의 이입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신발은 달랐다.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한 켤레 한 켤레에 지나온 10여 년의 시간이 묻어있었다.


이게 대체 뭐라고 갑자기 그런 감정이 밀려오는지. 그렇다고 뭐 드라마 미생에서처럼 밑창이 닳고 닳은 그런 구두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묘하게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내 마음이 지쳐갔던 것처럼 내 신발도 닳고 해지고 얼룩져가고 있었던 것이었나 보다. 이제껏 신발장에 넣어둔 체 더 이상 꺼내보지 않았던 건 나의 퇴사와 함께 나의 신발도 용도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잠시 혼자 멍하니 바라보다 '참 신발 가지고 별 감상에 다 젖는다' 싶어 얼른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면 물건들은 그냥 물건일 수도 있겠지만 물건 이상의 의미가 담기는 것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비닐 속 한가득 신발을 들고나가 수거함에 버리면서 한 짝 한 짝 통에 들어갈 때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유난히 가슴에 남아 울리는 밤이었다. 이제 정말 과거와 완전히 이별하는 그런 기분도 들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이고 지고 살던 물건들을 정리할 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애증이 서린 삶이 정리되는 기분이라고. 나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버려보니 알겠다. 왜 구입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지. 왜 필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지.


물건에는 결국 순간의 삶이 담기니까. 이 또한 삶을 정리하는 것이니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