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는데 만 익숙했던 삶을 돌아본다

by 알레

요 며칠 정리 좀 했다고 느껴지는 게 많다. 처음엔 그저 어질러진 집을 정돈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막상 정리를 시작하니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공간이 어질러진다는 건 결국 삶이 어질러져 있음을 의미했다. 어쩌면 진짜 정리해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아 삶을 대하는 마음이었던 게 아닐까.




정리해야 할 건 꼭 물건만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속에 쌓인 순간의 기록들. 언젠가 콘텐츠로 써야지 생각하며 찍어둔 사진. 돌아보면 어딘지도 모를, 그렇다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달리 포스팅하지도 않은 음식 사진들. 하늘 사진들. 요즘에는 숏폼 영상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고화질로 촬영한 영상들까지 더하면 정리할 것투성이다. 오죽하면 아이클라우드 1TB를 사용하고도 모질라 구글포토까지 1TB를 사용하는 지경일까.


돌아보면 뭐든 가득 채우는 삶에만 특화되어 살아온 것 같다. 물건도, 용량도 가득 찼다. 마음도 늘 그렇게 채우기만 급급 했던 걸까? 불안감, 자괴감, 답답함, 열등감 등. 제때 비워내야 할 감정들은 시기를 놓쳐 꼭 아프고 나서야 털어냈다. 온갖 잡념들이 만들어내는 슬러지를 제때 비우지 못하는 건 결국 채우는데 익숙한 삶의 습관 때문이었다.


그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소비에 대한 고찰에까지 이르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엇이든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소비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말 돈이 없거나, 언제든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을 만큼 넉넉해 굳이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물욕을 떨쳐내기란 고행에 가까울 테니.


도시에서의 삶은 곧 소비에 근접한 삶일 수밖에 없다. 5분만 걸어 나가도 편의점과 마트가 즐비하다. 견물생심은 인간의 본능이니 오늘은 피했을지 몰라도 결국 덤이 달린 것을 집어 들게 된다. 합리적 소비라는 명목하에 우리는 계속 밑 빠진 독과 같은 모자람을 소비한다.


다들 한결같이 말한다. 정리는 비우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때로는 비우기 위해 또 비움에 필요한 무언가를 사는 것을 보면 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납득이 되니까. 그 어려운 걸 해내야 비로소 제대로 비우기가 시작되는 법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 한 가지는, 비우다 보니 채우고 살았던 습관을 깨달았고 본능적으로 채우고 있었음을 알게 되니 비움의 필요가 절실해진다는 것이다.


‘과연 올 한 해 비워내는 삶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여전히 더 갖고 싶은 내 마음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걸까?’ 유난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