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을 떠났다. 창 너머 바다가 보이는 강원도 고성의 어느 아파트. 하루하루가 그저 여유롭기만 하다. 무엇하나 서두를 것 없고, 분주하게 하루를 재촉할 이유도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햇살이 만들어낸 황금빛 물결의 찬란함을 만끽하는 이곳에선 그동안 내가 무엇으로 고민하며 살았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새로운 집, 새로운 풍경, 딱 필요한 짐들만 있어 여유로운 공간. 여행이라는 걸 통해 삶의 진짜 필요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살아가기 위한 필요도, 마음의 짐도 딱 요만큼이면 될 것을. 왜 그리 가득 싸매고 살고 있었나 싶다.
여행이 필요한 건 생각지 못한 순간에 이런 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지인의 말처럼, 여행은 여행일 때 설렐 수 있고 삶의 문제에 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이 다시 삶의 터전이 되면 결국 새로운 삶의 고민으로 켜켜이 둘러싸이게 될 테니.
아마 나는 최근 나를 가득 채우는 무언가로부터 해방감을 얻고 싶었나 보다. 다를 것보다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백에서 오는 평안함을 한가득 느끼고 있는 것을 보니.
지난주 토요일 짐을 챙길 때만 해도 살림을 다 싸가는 기분이었다. 6박 7일의 일정은 처음이고 아무래도 겨울인지라 집에 있는 캐리어를 다 꺼내었다. 가장 큰 것 하나에 나와 아내의 짐을 담았고, 작은 것 두 개에는 아이의 옷가지를 담았다. 커피를 좋아하니 집에 있는 커피 도구도 다 챙겨 왔다. 거기에 가습기까지. 차에 짐을 싣는 데만 대여섯 번은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
막상 짐을 풀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겨우 캐리어 세 개와 몇 가지 짐들이면 충분하다고.'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고 지고 살아왔나 싶다.
지난주에 정리 좀 해보겠다고 한 며칠 분주했다. 당장 손을 댈 수 있는 만큼을 끝내고 나니 더 이상 어디서부터 나머지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좀처럼 시작점을 찾지 못해 일단 멈췄다. 하다못해 스마트폰의 사진들이라도 정리해 볼까 싶었지만 이마저도 여행으로 인해 미뤄졌다.
정리할게 많다는 건 결국 내가 나를 돌 볼 여유가 없이 살아왔다는 뜻과 같다. 이것도 저것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곳에서 나를 돌본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이유는 솔직히 소란스러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이지 않을까? 마음을 뒤 흔드는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만 기록된 SNS를 계속 소비하면서 괜찮은 척하고 넘겨보지만 이미 마음은 배배 꼬이고 있었는데. 사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이었음을. 텅 빈 건지 아니면 차고도 남을 만큼 드넓은 건지 모를 바다를 보며 솔직한 고백을 해본다.
살면서 정말 없어서는 안 될 만큼 필요한 건 얼마나 될까? 우린 언제까지 이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살아갈까? 물건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과연 어디까지가 적정 수준인 걸까? 그리고 나는 언제쯤에야 필요 외로 쪼그라드는 마음을 벗어던져 버릴 수 있을까?
삶의 필요를 되묻는 건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큼 나의 현재를 발가벗기는 질문인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삶에 대한 수많은 질문 중 가장 많이, 자주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물음에 오늘도 그저 침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