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
글쓰기가 뭐길래. 대체 이렇게까지 고뇌하고 갈망하게 돼버린 걸까.
늘 말하듯, '나'라는 우주를, 무엇도 제대로 비춰주지 못했던 캄캄한 우주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듯 들여다보게 해 준 것이 글쓰기였기에, 쓰면 쓸수록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갖고 싶어지는 욕망은 어쩜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또 한 가지는 나의 글이 나를 관통하여 삶에 대하여 같은 외로움과 아픔과 번민을 누군가에게 더 잘 안착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글쓰기 모임의 하루 인증이 끝나면 모임방에 쪽지를 보내듯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을 담아 보냈다. 어제로 끝난 모임의 마지막 쪽지에 적어본 글을 가져와 보았다. 생각하고 내뱉었다면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 순간, 그날 하루의 시간이 이어지면, 그리고 바로 그전에 작가님들과 나누었던 그 대화들이 있었기에 내뱉을 수 있었던 표현이 소중해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햇수로는 4년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써도 써도 갈증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모자람만 눈에 들어온다. 빚어내는 데로 모양이 바뀌는 도자기처럼 글쓰기도 어떤 마음, 어떤 상태로 대하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 그래서 종잡을 수 없다. 모두 다 나에게서 생산된 게 맞나 헷갈릴 정도다. 그러니 갈증이 계속될 수밖에.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싶으니까. 근데 또 그래서 계속 쓰게 된다. 쓰지 않으면 조율조차 할 수 없으니까.
몹쓸 글쓰기는 나의 삶에 안착된 글쓰기의 쓸모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두 가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나는, 써도 써도 모르겠을 글쓰기를 향한 애증의 외침이다. '이 몹쓸 글쓰기!' 어떤 날엔 한없이 좋다가 또 다른 날엔 한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녀석을 향한 마음이 한 가지 의미라면, 다른 하나는 '몹시 쓸모 있는 글쓰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소리라면 후자는 세상에 더 크게 외치고 싶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왜 굳이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고 싶어 졌을까? 굳이 왜 글쓰기를 종용하는 사람으로 나를 들이 밀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결론은 좋아서다. 먹어보고 맛있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과 같다. 사용해 보고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과 같다. 글을 쓰며 차분해지는 마음, 정돈되는 마음의 소란을 넘어 자기 욕망을 인정해 주고 욕구를 발견해 나아갈 수 있게 스스로를 견인해 줄 수 있는 것. 그게 글쓰기가 나에게 내밀어 준 손이다. 이만하면 참 쓸모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사람도 더 자기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길 바란다. 자기 이야기를 짓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돌아본 삶이 보잘것없어도 잔잔한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길 바란다. 적어도 내 삶에 긍정이 51%이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중이다.
이제 몹쓸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모임을 이어가려 한다. 누구라도 모임에 참여하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론 아무나 참여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갈망하는 당신이 오길 바란다.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당신이 오길 바란다. 나는 대단하지 않지만 그곳에 쌓일 우리들의 글은 힘이 있음을 알기에 오로지 글의 힘을 믿는 당신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