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피곤했지만 왠지 그냥 잠들고 싶지 않아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글과 사진의 분량이 책 한 권의 반 반으로 되어 있는 책이라 다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일본 도쿄를 여행하며 기록해 둔 기록집을 읽다 보니 마치 발걸음을 같이 하는 기분이 들었다. 책 속에 유독 음식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서 그런지, 새벽 2시가 되니 허기짐이 느껴졌다. '참아야 하나? 아니면 뭐라도 먹을까?' 고민도 잠시. 냉장고에 넣어둔 캐슈너트을 꺼내 조곤조곤 씹어먹었다.
방에서 또 한 권의 책을 꺼내왔다. 이번엔 좋아하는 카피라이터님이 쓴 일상에 대한 글이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 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예리한 관찰을 해내는 사람들이 늘 부럽다. 모든 카피라이터가 다 그렇겠냐만은 적어도 이 분 덕분에 아직까지 내 눈에는 카피라이터라는 존재는 특별한 안목을 가진 존재로 남아있다.
한 장을 넘기고, '오도독.' 또 한 장을 넘기고 다시 '오도독.' 읽기와 씹기를 반복하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새벽 2시 반. 이제는 자야 할 것 같아 책을 덮고, 먹던 캐슈넛을 정리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캐슈넛은 정말 먹어도 먹어도 배속이 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엄밀히 말하면 입이 허한 거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연이어 입에 넣었더니 오히려 자극적인 맛에 대한 갈증이 높아졌다. 결국 상상만으로 위산이 분비되면서 되려 허기짐을 느끼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괜히 먹었나?' 잠깐의 후회를 삼키고 다시 방에 들어와 글을 쓰기 시작한다.
독서를 하다 보면 괜스레 글을 쓰고 싶어지는 기분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캐슈넛의 고소함을 심심함으로 느끼며 자극적인 맛을 갈망하고 있었는데 묘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자극으로 치환된 기분이다. 오히려 좋다.
또다시 글쓰기 모임이 시작되면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어쩜 그렇게 매번 던져도 또 새로운지. 바로 직전에 보았던 두 권의 책 때문인지 오늘따라 만화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빙글빙을 돌리며 원통 안을 바라보면 안에 들어있는 반짝 거리는 것들이 거울에 비쳐 무작위로 만들어내는 예쁜 모양을 감상하는 만화경처럼 글쓰기를 통해 바라보는 삶은 쓸 때마다 달라지는 기분이다.
어떤 날은 진한 의미를 담아내고 싶어 모든 것에 의미부여를 하게 되고, 또 다른 날엔 일기보다 가벼운 그런 하루를 적어낸다. 그런가 하면 성찰과 반성으로 끝맺음을 장식할 때가 있는가 하면 크레셴도처럼 점점 파이팅 넘치며 마침표를 찍기도 한다.
바라보는 나는 동일한데 단지 글쓰기라는 도구를 거칠 뿐이었다. 만화경의 원통을 돌리듯, 굴러가는 삶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글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래서 매번 모임의 시작에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답은 매번 동일하지 않다.
그래도 그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원래 일상은 시시한 거라고 하는데 글을 쓰는 삶은 시시할 틈이 없다. 이번 한 달은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써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겨본다. 같은 눈으로 바라보지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보편적 삶 속에서 발견하는 개별적 삶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은 또 어떤 모양이 보일까? 쉼 없이 원통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