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토요일에 있었던 오프라인 워크숍에서 사진 촬영 알바를 했다. 일로서 사진 촬영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안을 받았을 땐 흔쾌히 수락했지만 정작 촬영일이 되니 어떻게 찍어야 할지 얼마나 찍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셔터를 눌렀다. 아무렴 내가 정말로 전혀 준비 없이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고정으로 나오시던 작가님께 원포인트 팁을 듣긴 했던 터라 초반 1시간 안에 대부분의 사진을 촬영하긴 했다.
살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사진사'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준 적도 없었기에 모두가 자리에 앉아 강연자를 바라보고 있는 매우 정적인 세미나 실에서 분주한 한 사람이 된다는 게 무척 어색했다. 어색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엔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조차 굽신거리듯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재빠르게 옮겨 다녔다.
사진기도 거의 20년이 다 된 기종의 DSLR 카메라다 보니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 소리가 났다. 마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듯 '촥! 촥! 촥! 촥!' 소리에 등줄기에 땀이 한 줄기 흘렀다. 정작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런 중에도 한 장이라도 더 건지려고 3시간 중에 2시간가량은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이도 찍었던 것 같다.
과연 몇 장이나 건졌으려나?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주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요즘이야 스마트폰 기능이 워낙 좋아져서 전문적이거나 상업적인 사진 촬영이 아니라면 굳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만큼 결과물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또한 모바일 앱을 통해 바로 사진 보정도 가능하니 그야말로 최고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DSLR을 들고 간 이유는 아무리 스마트폰이 좋다고 한들 DSLR만의 감성을 다 만들어 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주 동안 몇 장의 사진을 찍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스마트폰에 용량 가득 사진을 저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무엇보다 일을 맡긴 클라이언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2주간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다해서 거의 650장 가까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개개인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그룹 모임을 하는 사진. 전체 사진. 그리고 발표자 사진 등. 원샷 원킬의 명 사수처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완벽한 사진을 건지는 실력이면 오죽 좋겠냐만은 저녁 시간이어서 자연광은 부족하고 계속 움직이는 피사체를 담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무조건 연속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PC에 연결하여 사진을 열어보고 나서 느낀 건데, 아무리 연속 촬영이어도 실력이 부족하면 건질 수 있는 게 정말 없다는 것이었다. 말을 하는 가운데 어쩜 그렇게 애매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찍혔을까? 이것도 참 기가 막힌 스킬인 듯하다. 절묘하게 엇박자로 피해 간 촬영 타이밍! '크흐~'가 아니라 '이런 망~'이었다.
근데 더 문제는 어쨌든 이 중에 셀렉을 해서 보정을 한 뒤 사진을 보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좋아하지 않는 일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몇 시간을 가만히 자리에 앉아 눈이 침침해질 만큼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주 피곤이 극에 달한다. 게다가 650장을 둘러봐야 하는 상황이니...
또 오랜 습성이 올라왔다. '일단 미루기!' 처음엔 한 주 촬영이 끝나면 다음 촬영 전까지 보정을 다 끝내고 전송까지 마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보정작업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기특한 건 매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날 밤 모든 파일은 외장하드로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마저 안 해놨으면 아마 여전히 보정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촬영은 좋아하지만 솔직히 이후 일처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고 싶다면 사후 일처리를 잘 마무리해야만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영 가지 않는 일은 미루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긴 한 것 같다.
문득 어제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행동을 미루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사실 두려운 감정 때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혹 그동안 중요한 일을 미루는 행동도 '귀차니즘'이 아닌 어떤 두려움이 작동하고 있던 걸까?'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 일정 부분 완벽주의 성향이 발동했던 건 맞는 것 같았다. 혹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게 나오면 다음 기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일어났던 것을 떠올려 보면 말이다.
다행히 불안감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겠지만 이제 처음 겪어보는 일인데 대체 얼마나 만족스러운 상태을 바란단 말인가.
마음을 비우고 나니 이제 남은 건 선택뿐이었다. 얼른 끝내버리고 더 이상 신경 쓰지 말 것인가? 아니면 꽤 오랫동안 그랬듯 마감일까지 차일피일 미루다 급하게 몰아서 할 것인가? 다행히 전자의 선택을 한 뒤 오늘부터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최대 이번주는 넘기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로는 고무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요'라는 누군가의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좋아하는 것' 안에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 같아서 더는 말하지 않겠다만 마지막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파생되는 좋아하지 않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끝내버리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진 작업을 빨리 끝내 버고 마음 편히 있으라는 자기 설득의 메시지를 이리도 길게 쓰고 있다는 소리다. 오늘 자기 전에 일단 하루치는 끝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