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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무한한 우주

by 알레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삶'과 '죽음'이라는 유한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지만 그 길이가 얼마가 되었든 존재 안에 내재된 무한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광활하다. 나는 한 사람은 작은 우주라고 생각한다.


'우주'라는 공간은 무한하다고 하면 무한할 수도 있지만 인지할 수 있는 범위까지로 한정 지으면 그것이 전부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에 근거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삶이 펼쳐진다. 반면 인지할 수 있는 것 까지가 자신의 세계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딱 그만큼의 삶을 살아간다. 정답은 없다. 그저 자기의 선택일 뿐이다.


나는 지금껏 사람은 누구나 무한한 존재라고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내 삶에 드러난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면 나의 믿음은 '소망'이나 '바람'정도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진짜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이토록 제한하며 살지 않았을 테니까.


나폴레옹 힐의 <더 석세스>라는 책을 읽으며 그가 열거하는 미국의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 대해 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명확한 핵심 목표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마스터 마인드(조화로운 조력자)가 존재한 것도 맞다. 그러나 내가 더 주목한 건 그들은 영적인 힘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책에서 말하는 '영적인 힘'은 특정 종교를 언급하는 게 아닌 내적 자기(책에서는 'inner self'로 표현된다)를 의미하며, 그들은 '내적 자기'를 통해 목표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직감을 얻어 결국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만이 성공의 유일한 조건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책에서도 명확히 언급하고 있다.


위대한 성공의 스토리에는 어김없이 불가능을 넘어선 무언가가 등장한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하며 강한 동기를 느끼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그 스토리를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나왔을 때의 감동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빨리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마음은 생각보다 무의식 중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지난날 나의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었듯 당신도 나와 비슷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교육과 처해있는 삶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진짜 나다운 삶을 살아가며 나다운 성공에 이르기 위해선 영적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나폴레옹 힐은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이 내용은 대부분은 물리적인 힘을 활용하며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서야 최후의 보루로 선택하는데 그것이야 말로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주변에 순수한 열정과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쉽게 와닿을 것이다. 그의 모습에는 그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평온함이 배어있다.


요즘 나는 잠재의식이라는 영역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고 있기에 더 끌리는 영역이다. 그러나 알면 알 수록 내가 얼마나 영적인 힘에 무지했으며 피상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더 기대하게 된다. 그 무한함이 열어주는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책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진짜 나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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