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삶의 여정 캠프 2일 차. 아침에 가볍게 조식을 먹고 우선 숙소 근처를 거닐었다. 서우봉으로 향하는 북촌리에 위치한 덕분에 올레길을 따라 서우봉 초입까지 다녀왔다. 태평양 전쟁 때 만들어진 일본군 동굴 진지가 있다길래 조금은 으스스한 숲길을 따라가 봤다. 해안절벽을 따라 18곳의 동굴진지 와 2곳의 벙커가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입구 두 군데 정도만 보고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바다가 너무 예뻐서 한 참 멍하니 바라봤다. 그사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고 나는 두 걸음 늦게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분명 오늘 예정된 계획이 있었음에도 한참을 바닷가에서 혼자 물멍, 하늘멍을 하면서 '언제든 방향을 틀어 버릴 수 있는 유연함'이 '알레다움'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일정은 제주 해녀 박물관과 비자림에 가보는 걸로 정했다. 당초 계획은 형과 사려니숲길에 가는 것이었지만 중산간 지역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어 그냥 혼자 일정을 보내는 걸로 했다. 처음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곳을 가볼까 생각했는데 영 내키지 않았다.
'가장 제주다운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딱 더 오른 게 '해녀'였다. 제주도에 여러 번 왕래하면서도 여태 해녀박물관에는 다녀온 적이 없었다. 숙소에서 멀지도 않아서 딱 좋았다. 해녀 박물관으로 방향이 정해지니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또 멀지 않은 비자림으로 연결되었다.
나 홀로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이다. 여유로운 오전 산책을 마치고 해안길을 따라 느긋하게 이동하던 중 김녕해변과 바다색깔이 환상적이어서 차를 세웠다. 미리 챙겨둔 쪼리로 갈아 신고 바로 바다에 발을 담갔다. 바닷바람은 끈적거렸지만 발에서부터 종아리까지 느껴지는 시원함은 끈적임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아내와 아들이 내려올 텐데, 비만 오지 않는다면 아이랑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다시 목적지로 이동했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거의 1시간 걸려 간 것 같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성게국수가 맛있었던 식당에 들러 점심 한 그릇도 먹다 보니 한참 걸렸다. 근데 뭐 아무렴 어떤가. 이게 나 홀로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박물관에 도착 후 관람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쓱 훑고 가듯 관람했을 텐데 오늘은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았다. 해녀 삼촌들의 지난했던 삶을 가슴에 담고 싶다는 마음과, 그 억척스러웠던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에서 여성은 사실상 가장이었다. 물을 긷고, 밭일을 하며, 잠녀의 삶에, 엄마로까지 살았어야만 하는 그녀들의 삶에 머무는 동안 어쩐지 애잔함이 밀려오는 듯했다. 일제 강점기 때 수탈된 섬을 되찾고자 앞장섰던 것 역시 해녀 삼촌들이었다.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도...
나는 해녀.
한쪽 벽면에 적혀있던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간 익숙한 표현은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으니 나는 아무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도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강해지고 있는데, 해녀 어르신들은 '아무개 엄마'도 '나 자신'도 아닌 '해녀'로 살아가는 게 너무 당연했다. 그만큼 이분들에게 물질은 삶의 근원이었고, 바다는 삶의 전부였을 테다.
어르신들의 인터뷰 영상을 찬찬히 보다 보니, 물질을 하는 것에 대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고 표현하시는 걸 보았다. 그만큼 바다에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이기는 선택이었을 것 같다.
매몰차 보이지만 제주라는 척박한 자연은 일찍이 굴곡진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했고 오랜 시간 숨을 참으며 가정을 건사한 해녀 어르신들에게는 삶 자체가 훈장으로 남았을 것 같다는 경외심이 올라왔다.
이번엔 해녀 박물관을 나와 비자림으로 향했다. 벌써 4년 전이다. 퇴사하고 제주 한달살이를 하러 왔었는데 그때 아내랑 아이랑 유모차를 끌고 셋이 함께 다녀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에는 유모차가 있어서 오솔길 코스를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비가 내린 뒤의 숲길은 유난히 향기가 짙다. 바다의 꿉꿉한 바람과는 달리 숲의 바람은 선선해서 기분이 좋다. 삼삼오오 함께 걷는 이들을 피해 느릿느릿 걸었다.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숲을 온전히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았다.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느끼며 천천히 걷다 보니 점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자림에 있는 나무들은 500~800년생 나무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 가지가 굽이굽이 굴곡진 상태로 여러 갈래 뻗어있었다. 이 나무 저 나무의 가지가 서로 겹치다 보니 서로 뒤엉켜 숲 터널이 형성되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뒤엉킨 듯 보여도 서로를 상하게 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거듭하면 공생의 지혜가 생기나 보다. 바다의 장엄함과는 달리 오래된 숲이 주는 평온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산책을 마쳤다.
해녀들의 삶을 보고 비자림을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굴곡진 나무들이 서로를 지탱해 주듯 해녀들의 굴곡진 삶이 이 아름다운 섬을 지탱해 줬다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굴곡진 인생은 대체로 애잔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굴곡은 오히려 지탱해 주는 힘으로 다가왔다. 삶이 늘 평온하기를 바랐지만 굴곡이 있어야 더 단단해질 수 있고 다른 누군가를 지지해 줄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의 나의 방황도 역시 이런 나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담아두고 있는 삶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제주라는 섬에서 해녀 어르신들과 천년의 숲을 통해 인생의 여정을 다시 한번 다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