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때때로 해결과 대체로 재앙의 시발점
책 속에서 만난 한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뭔가 어색해서 읽고 또 읽어봤다. 상식적으로는 이렇게 쓰여있어야 할 것 같았다. '소통은 대체로 해결과 때때로 재앙의 시발점'이라고. 그러나 정 반대였다. 흥미로웠다. 저자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뒤이어 이런 문장이 나온다.
건강한 갈등은 당사자들이 문제에 함께 맞서
노력하기 때문에 관계가 건강해지지만,
해로운 갈등은 당사자들이 서로에 맞서
싸우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된다.
이 문장들은 책 <CEO의 다이어리>에 등장한다. 두 번째 문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저자의 의도를 알았다. 갈등 상황이 빚어지면 대체로 소통의 부재, 또는 잘못된 소통 방식이 원인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소통은 '때때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대체로' 재앙의 시발점이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최근 교회에 갈등 상황이 발생했다. 문제의 본질은 부족한 이해에 있지만 감정의 골이 커져버린 주된 이유는 역시나 소통에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갈등의 시작은 별것 아닌 듯 보일정도다.
가장 아쉬운 점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는 것에 있다.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일파만파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수습하느라 오히려 난리법석인 상황이다. 물론 그마저도 매끄럽지 않아 결과적으론 혼란만 야기시키는 꼴이 되었지만.
한 발 물러서 있던 나는 우선 상황을 이성적으로 되짚어보려 했다. 감정을 최대한 걷어내고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적절한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바라는 건 공동체의 회복이고 연합이니 만큼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했다.
솔직히 처음엔 나도 감정이 앞서 갈등의 대상들을 향한 답답함이 먼저 올라왔다. 집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땐 감정적인 표현도 가감 없이 내뱉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말이 명료해졌다.
덕분에 목사님과 장문의 메시지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일편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나는 갈등의 당사자는 아니기에 여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상황에서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자 했고, 향후 갈등의 봉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갈등은 언제나 발생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갈등 이후다. 잘 봉합된다면 더 건강한 관계가 될 것이라 믿기에 부디 지혜롭게 해결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