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어를 한다는 것

영어를 '잘'해야만,

by alerce


며칠 전 뮌헨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 흥미로웠던 점이 있었는데 독일인들은 참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가게를 가도, 어떤 사람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눠도 다들 영어로 기본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베를린에 출장을 갔을 때도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느꼈지만, 뮌헨이라는 지방 도시에서도 이렇게나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이야. 같은 서양이지만 독일어도 하면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럽권에서도 프랑스나 스페인을 갔을 적에 영어로 소통이 안되어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어느 나라를 갈 경우, 그들의 고유 언어가 있기에 그 언어를 익혀가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 년에 여러 국가를 다니는 나에게 모든 언어를 익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니 결국 어느 정도 영어가 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인지 남녀노소 영어를 잘하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여행하기가 꽤나 수월했다. 문득 흥미로워져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영어를 잘하는 나라 10위 안에 독일이 있었다. 같은 언어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기도 하고, 대학 교과 수업에서도 영어를 많이 요구해서 다들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문득 우리나라는 어떤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영어 교육에 집착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어를 잘하는 나라 10위 안에 한국은 없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이 있을 정도로 영어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대부분 독해, 문법, 어휘 위주인 것이 문제이지만. 물론 요즘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나때만 해도 저렇게 배웠기 때문인지, 여전히 내 또래 20-30대 친구들은 실질적은 회화나 듣기에 자신감이 많이 없어 보인다. 어릴 때 외국에 살 다오지 않은 사람 중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독해는 어느 정도 되는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말하기가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문제인지, 실력이 문제인지 분간도 안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근 1년 넘게 전화영어를 매일 30분-1시간씩 하며 필리피노 선생님, 캐네디언 선생님과 함께 혹독하게 스피킹 연습을 했다. 내가 전화영어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나는 기본적으로 영어 회화 실력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통해서 선생님과 서로의 생각을 어떻게든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두 선생님은 찰떡같이 알아들으셨기 때문도 있지만... ( 오히려 나중에는 이게 더 공부에 안 좋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국인과 듣고 말하는 과정을 꾸준히 연습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좀 틀리면 어때? 소통만 되면 되지! 다들 알아듣던걸!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랄까? 그래서인지 외국에 가서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나는 그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걸까? 전. 혀. 아니다. 나는 한 번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따라서 관용적 문구나, 디테일한 표현은 일단 틀리는 듯하다. 문법에 기초하여 말하다 보니 틀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I envy you! '라는 표현이 '부럽다~!'라고 생각하고는 사용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전혀 저런 문장을 쓰지 않는단다. ' I'm jealous!'라고 하는 게 맞다고 한다. 근데 재밌는 것은 캐네디언 선생님은 내가 'I envy you!'라고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냥 대화를 이어나갔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어로 '와 부럽다'를 '와 질투나'라고 한들, 어유 누가 그렇게 말한다고 그래?라고 외국인에게 완벽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듯이, 아마 캐네디언 선생님도 내가 외국인임을 감안하고 그냥 지나치신 것 같다. 이런 뉘앙스적인 부분도 꾸준한 공부로 교정될 수 있는 부분이겠으나, 나는 아직은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한 영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뱉어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부끄러워서 입 밖에 못 내고 머릿속에 엉겨버리던 단어들이 어떻게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행을 가서 디자인 샵 주인과 인사를 나누다가 맛있는 현지인 식당을 추천받아 갈 수 있게 되었고, 독일의 역사에 대하여 옆에서 술 먹던 동네 아저씨에게 심도 있게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과 미국과 중국의 관계, 한국은 왜 출산율이 낮은가 등의 이야깃거리를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허접한 실력으로.


이렇게 저는 입이 트였답니다~라고 해피 엔딩으로 영어에 대한 글이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사실 요 근래 나는 다시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 나는 지금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그들은 웬만해서는... 정말 수준 높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실질적인 회화를 못 하더라도 어느 정도 다 알아듣고, 귀를 쫑긋 세우고 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학연수, 유학, 워킹 홀리데이 등등.. 많은 기회로 일상의 영어를 터득한 사람이 참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전에 친구와 친구의 외국인 친구, 그리고 유학생 친구 이렇게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외국인 친구가 한국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어로만 얘기하면 그 친구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틀리더라도 영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 한국인 유학생에게도 영어로 더듬더듬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유학생 친구는 나에게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뭐라고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졌다. 그렇다.. 나는 틀린 영어를 한 것이고, 아마 내 의미가 전달이 안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외국인 친구는 내 말을 다 알아듣고 대답해 주었는데.. 어째서 유학생 친구는 나에게 왜 영어를 쓰냐는 듯 되묻는 것일까? 어쩌면 그 친구는 허접한 내가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같은 한국인끼리 영어를 쓰는 게 꼴값 같았을지도... 네가 뭔데 나에게 영어를 쓰냐는 듯한 어투는 나에게 몇 날을 부끄럽게 하였다. 이게 과대망상이었을까? 만약 과대망상이라면 이런 망상은 아마 대학교 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대학교 시절 유학생활을 하고 왔던 남자 친구는 영어 발표 수업에서 정통 영어 발음이 아닌 영어로 고군분투하며 발표하고 있는 어떤 친구를 보며 나에게 귓속말로 분명히 말했다. '저런 이상한 영어 쓰는 게 듣기 싫다고.'


한국 사람들은 분명 '영어를 쓴다는 것'으로 많은 것을 판단한다. 나의 친한 친구는 호주에서 살다 왔음에도 평소에 영어를 절대 쓰지 않는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보통 유학생들은 단어가 잘 생각 안 나면 영어 단어를 중간중간 섞어 말하던데 너는 왜 그렇지 않아?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어릴 때 그렇게 말하다가 잘난 척한다고 왕따를 당했단다. 그 이후로 절대로 영어 단어를 섞어 쓰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거 참....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영어는 그저 소통을 위한 언어다. 영어는 특권도, 지식의 기준도, 잘남의 척도도 아니다. 영어를 섞어서 쓸 수도 있고, 발음이 안 좋을 수도 있고, 틀린 표현, 콩글리시를 쓸 수도 있다. 우간다는 우글리시, 싱가포르는 싱글리시라고 하여 그들만의 영어적 표현을 공유한다. 콩글리시로 'social media'가 'SNS'라고 정착되어 외국인이 못 알아듣는다고 한들, 한국인끼리 소통이 된다면 그 또한 하나의 언어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왜 영어를 쓸 때마다 남들을 의식해야 하는 것일까. 왜 꼭 혀를 굴리는 정통 미국식 발음을 고집해야 하는 것일까? 인도인들은 인도 특유의 억양으로 충분히 영어를 소화해낸다. 그리고 원어민들과 소통한다. 소통에 있어서 발음은 부차적인 것 아닐까. 좀 어색하면 어떻냔 말이다. 이런 한국의 영어에 대한 자격지심이 점점 나의 입을 틀어막고 숨이 막히게 한다. 본인이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되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또다시 '뭐라고요?'라고 물어올 어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럴 수가 없더라고 대답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틀린 영어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분명 더 자유롭게 영어를 즐기게 될지도 모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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