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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rce Jun 06. 2022

에세이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잘 쓰지는 못한다.


나는 에세이를 쓰는 것과 읽는 것 둘 다 좋아한다. 에세이를 읽는 게 좋아서 쓰기 시작했던가, 어릴 적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으니 쓰는 것이 먼저였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늘 에세이라는 장르를 좋아했다. 물론 에세이만 읽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소설도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의 생각을 잘 담아낸 이야기고, 에세이는 날것의 타인의 생각이라고 느껴진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삶을 가감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그 삶을 바탕으로 형성된 다채로운 생각과 관점을 느껴보는 것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런 삶을 살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좀 더 나도 마음의 문이 열리는 기분이 든다.


절대 내가 살아보지 못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또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 옛날 유대인 안네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100살을 살아낸 김형석 교수님의 인생을 통해 노인의 삶을 느껴보기도 하고,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쾌한 생각들을 웃으며 공감해 보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다채롭고 콘텐츠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일부를 느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누군가도 내 글을 보면서 낯선 타인의 인생의 일면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고 했을 때 무조건 나는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업종을 살려 ‘어쩌고 저쩌고 디자인하는 법’, ‘요즘 디자인 트렌드’ 따위의 정보를 주는 비문학적 글을 쓴다면 오히려 더 쓸 내용도 많고, 이런저런 고민 없이 마음도 편할 것 같았지만, 굳이 시간을 내어 뭔가를 쓴다면 역시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지만 역시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한계가 보인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쉴 새 없이 글을 써 내려갔지만 요즘은 이미 내 안에 있던 많은 생각을 다 토해내서인지 크게 할 말이 없다. 도돌이표가 되는 생각들이 많다 보니, 쓴 내용을 또 쓰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가 하면 생각이라는 것은 계속 바뀌기 마련이다 보니, 쓴 내용에 대하여 반박하는 내용이 써지기도 한다. 뭐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아무래도 좋을 일인데도 혼자 또 그러려니가 안 되어 사라지는 글이 많다.


세상일은 직접 해보면 막상 쉬운 게 없다. 몇 문단, 몇 줄의 에세이도 쉽게 써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필요하고, 경험에 따른 나만의 관점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하다 보니 별 일도 없고, 별 생각도 없는 와중에 밑도 끝도 없이 글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다. 소위 유튜버들의 용어로 ‘유튜브 각’이라는 것이 있다. 유튜버가 방송 소재가 될만한 거리가 생겼을 때 쓰는 말이다.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 보니 방송 촬영 중에 사건 사고가 터지거나 했을 때, 업무에 차질이 생긴 것인데도 오히려 좋아하면서 촬영을 하기도 한다. 유튜버들에게 유튜브 각의 순간이 있다면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에세이 각’의 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생각이 많아지는 때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생각이 전처럼 소란스럽지 않은 것 보면, 전보다는 삶이 평안해진 것은 맞는 듯하다.


에세이는 글의 장르로 보았을 때 난이도가 낮은 글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엄청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로 영혼을 울리는 소설도 있고, 시대에 필요한 어떤 정보들을 분석하여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는 책들도 있다. 그런 글들에 비하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대단한 지식 없이 써 내려가는 에세이는 상대적으로 보잘것없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는 스토리의 영역도, 정보의 영역도 아니다. 그렇기에 더 애정 하게 된다. 대단하지 않아서. 정해져 있지 않아서.


누구나 쓸 수 있고,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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