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rce Sep 10. 2023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살면서 한번 본 드라마를 다시 본 경우는 미스터 선샤인과 나의 아저씨밖에 없는 것 같다. 스토리를 끌고 가는 고애신과 유진 초이의 러브 라인보다도 혼란한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과 일제강점기의 평범한 일상들을 그려낸 것이 인상 깊었다. 그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인물은 배우 변요한 님이 맡은 김희성이라는 캐릭터었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어떻게 무용한 것을 사랑할 수 있지? 나는 언제나 유용한 것만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는데, 김희성이 읊은 것들은 나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공감이 갔기에 놀라고 충격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기능적 용도가 없어도 그 자체로 충분한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하는데 나는 늘 그런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과학, 기술, 돈 같은 분명하고 깔끔한 것들이 가치 있다고 여겨왔다. 달, 별, 꽃 같은 것들은 객관적인 수치로 유용성이 있지도 않고 실질적으로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들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달, 별, 꽃, 바람 같은 것들도 과학, 기술, 돈 같은 것들보다 유용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기에 아름다움, 감정의 어루만짐, 관계 같은 것들이 쉼과 위로를 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자연현상, 음악, 시, 웃음 등등.. 말랑말랑한 이런 것들은 인류에게 너무나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하다.


철학, 이데올로기, 글, 기록, 종교, 애국심, 애사심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살기 위해서 굳은 심지를 원한다. 정신적 목표와 판단의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소프트웨어가 부재한 컴퓨터는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가져도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때로는 인간의 삶에서 제일 유용하기도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