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음먹고 뒤틀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시간들
퇴근을 하고 돌아오니 집이 살짝 서늘한 듯하여 보일러를 켜두고 자기 전에 꺼야지 싶었는데, 고단한 이 내 몸이 그것을 깜빡하고 잠든 바람에 밤새 보일러가 펑펑 돌아가더니 온 집을 찜질방으로 만들어버렸다.
참 오래간만에 덥다는 말을 툭툭 던지며 도망치듯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온 발걸음, 처음에는 아직 보일러의 영향인가 싶다가도 여전히 추워지지 않는 두 손, 두 뺨이 낯설었다. 알고 보니 오늘은 입춘이었다. 아, 그렇구나.
날씨는 참으로 변화무쌍해져 가고, 지구온난화라는 거창했던 말이 너무도 익숙하게 체감되는 이 시기에도 절기라는 것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신기하다 싶다가도 출근길 내내 그것을 부정해 보았다. 난 어제 틀어둔 보일러 때문에 춥지 않았던 것이라고. 이렇게 어물쩍 봄이 오고, 여느 때처럼 여름이 빨리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 나이가 또 한 뼘, 저만큼 가버릴 것 같아서.
사실 나이가 드는 것이 싫다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20대보다 30대가 더 좋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전의 삶도 찬란했지만, 조금씩 익어가는 나의 삶 또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한 물리적 거부감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문득, 어느 순간부터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시간들이 조금씩 불편했다. 내가 마음먹고 뒤틀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시간들, 사건들. 그것이 편하면서도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씩 아이가 아프고, 덜컥 문제들이 생기고 나면 평온했던 일상이 감사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주말에 아이랑 뭘 하고 놀아야 할지 정도의 고민들이 유일했던 시간들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그것을 이따금 씩 깨달으면서도, 또 이렇게 타성에 스며들면 툭툭 불안함이 압정처럼 튀어나온다.
여전히 답은 없다. 보통 이렇게 머릿속을 정리하고 지난날들을 하나 둘 되돌아보면 잘 살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의무적으로도 하고 싶은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어젯밤엔 보일러를 껐고, 오늘 아침 집은 무덥지 않았음에도, 출근길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해진 것. 일단 딱 그 정도 만족하고, 그만큼만 불안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