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하거나 버럭하거나 잠수타거나.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최근 저희 집은 슬슬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 녀석 때문에 매일이 살얼음판입니다. 와이프가 ‘예스는 예스, 노는 노’인 아주 딱 부러지는 성격이기 때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들 녀석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제대로 수긍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죠.
아들이 친구와 점심을 같이 먹겠다고 초대했습니다. 당연히 부모인 저희는 집 청소를 하고, 아들에게 점심 전까지 방청소를 해놓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TV를 보고 있던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합니다. “응, 그럴게” 그리고는 계속 TV를 봅니다.
11시가 넘어가서 엄마가 한마디 하니 그제사 꾸역꾸역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갑니다. 잠깐 치우는 것처럼 보이더니 조용해져서 방을 들여다보면 책상을 치우다 만화책을 발견해서는 그걸 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습니다. 이미 시간은 12시가 다 되었는데 말이죠. 방인지 쓰레기통인지 모를 그곳에서 이미 약속 시간도 넘어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오는 재밌는 것에 빠져서 진도가 안 나갑니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가고 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다시 뭉기적 거리지만 청소가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이 수차례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방청소가 반도 안 끝났는데 친구가 왔습니다. 친구 앞에서 망신을 줄 수는 없으니 일단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친구가 돌아가고 나면 불러서 혼을 냅니다. 그러면 “알았어, 앞으로 잘할게”라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또 똑같습니다. 전날 반성한 녀석은 이 놈과 다른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런 아들놈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왔던 경양식집 사장을 보면서는 ‘기본이 안되었다, 저 사람이 명문대를 나와서 머리는 좋은지 몰라도 남에게 배우려는 태도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지는 모르면서 말이죠(...)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도무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죠.
작은 잘못이나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심리적 유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 변명을 좀 하자면 그럴 유연성을 가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세상 경험이 없는 탓이죠.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봅시다.
심리적 유연성이 없는 사람, 그래서 타인의 작은 지적이나 문제제기에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버럭 화를 내거나, 회피해버리는 사람은 보통 다음의 세 가지 증상을 보입니다. (유연성이 있는 사람은 그런 문제제기를 자기 자신 전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태도나 처리방식의 비판으로 국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적에 수긍하고, 높은 수용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 생각 없이 ‘Yes’라는 대답을 합니다.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자기의 직접적인 이해나 욕구 충족이 걸린 사안이 아닌 경우 대단히 수동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권위적인 상사들이 직원들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면 대충 약속해놓고 막상 약속시간이 되면 그런 약속 없다고 잡아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정확히 같은 사안입니다.) 자신의 관심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약속이기 때문에 막상 상황이 닥치면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분노하거나, 변명하는 식의 방어기제만 작동하는 겁니다. 이들의 약속은 신뢰성이 전혀 없습니다.
둘째, 이야기나 업무의 진행되는 맥락을 파악하려 하기보다 그냥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주제에만 매달립니다.
팀원간, 유관부서와 합의한 업무 방향성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놓고는 자기가 얼마나 노력했고, 몇 시간을 투입했는지 아느냐고 따지고 억울해합니다. 문제가 되는 결과물의 방향과 퀄리티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하면서 말이죠. ‘합의된 방향과 어긋난 결과물 때문에 상대가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그 상황을 타개하려면 내가 어떻게 바꿔야겠구나’라는 큰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상대가 던지는 말 혹은 예시 하나에 시비를 거는 겁니다.
셋째, 문제가 되었는 상황, 혹은 그 과정을 반복합니다.
사고 치는 인간은 그다음에도 사고를 치고, 한번 뻔뻔하게 대처했던 인간은 그다음에도 똑같은 대처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리고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핑계, 꼬투리, 분노, 회피 등 오만가지 지저분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문제적 인간이란 걸 모릅니다. 남들이 직간접으로 이야기했을 테지만,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지요. 자기 객관화라는 게 전혀 되질 않으니, 문제를 흔쾌히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마음 자체를 갖지 못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의 회사에는 이런 사람이 없다고요?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아주 좋은 조직에서 일하시는 겁니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요? 그럼 냉정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진상 보존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바로 이런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주변에 이런 인물이 많다면 어떻게 할까요? 혹은 여러분이 왠지 이런 사람 같다면 어떻게 할까요?
구체적인 대처법과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 더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글쓴이 :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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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 슬직살롱을 운영 중입니다.
혼자서만 고민하던 이야기를 같이 나누면서 DISC, Big 5 Personality Test를 통해 나 자신의 심리 상태도 분석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현실적인 해결책도 함께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