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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배치의 날, 나는 개선장군이 되어 인사팀에 입성했다

진짜 사회 생활의 서막을 걷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시작이 좋다.

by 알렉스키드
계열사 교육에서 느낀 잔잔한 긴장감,
사회 생활 첫 경쟁의 이야기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51


교육 기간중인 어느날, 주 진행 과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내일은 우리 신 사옥
현장으로 견학을 갑니다.


네? 어디요?

신사옥? 그러면 회사가 이전하나?

“우리 회사 이사가?”

“뭐야 형, 내년에 00동으로 가잖아.”

“어? 진짜? 나만 몰라?”

“아 형 스터디 안했어? 뭐야 왜 그걸몰라.”


아아.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가 택시타고 40분 걸리는 거리로 멀어지는구나
..근데 거기 커피빈은 있으려나? 스타벅스 정도는 그래도 있겠지??


지도 검색을 해본 나는 좌절했다

아아. 아무것도 없다! 아니야 이건 예전일거고 내일 가보면 좀 다르겠지. 삼성이 들어오는데 이미 뭐 맥도날드고 스타벅스고 다 같이 들어오겠지?

아니 근데 GS 대림은 광화문으로 가고 현건도 경복궁인데 경쟁사면 우리도 거기로 가야되는거 아닌가 왜 우리만 저기로


실제로 스타벅스는 그 시점으로부터 4년뒤,
사옥 이전 후 3년 뒤 들어왔고 맥은 또 2년 뒤
스벅 오픈하던 날 무슨 무료행사하는 줄 알았다.
늘어선 줄이 흡사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다.


그저 점심 시간 또는 퇴근후 머리를 식힐만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카페들을 원했을 뿐인데. 있다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더라. 진정한 복지는 사내카페가 아닌 "스세권"이라는 것.


다음 날 다같이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새 회사원 됐다고 회사 건물을 나가서 다같이 이동하니 너무 신나더라. 퇴근하고 뭐하고 놀지, 이 옷이 이쁜지 저 옷이 이쁜지 서로 얘기하다가 동기 형이 한마디 꺼냈다.


“L군아, 너 퇴근하고 구두 신고 스벅가고 쇼핑하고 해야되는데 어쩌냐? 거기 삼성역 가는데만 40분이야.”


아아 제발 그만해

그래도 하루 지나고보니, 좋은 회사에 합격했다고 그 난리를 쳐놓고서 벌써부터 감사함을 잃고, 볼멘 소리하는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져서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마음도 고쳐먹고)


“괜찮아 형 그래도 1년은 여기 있으니까 여기 있을 때 실컷 누려야지.

그리고 어차피 우리 다 맨날 야근할걸? 집에가서 잠이나 자면 돼”

그렇게 L군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스벅 커피빈 파리크롸상 김영모 스타슈퍼(유일하게 당시 펠레그리노 탄산수를 팔던!) 미타니야 등이 다 있는 인프라가 정말 좋았다는걸 일년 뒤 뼈저리게 느꼈다. 삼성역 강남역 버스타고 가야된다고 아쉬워하던건 정말 복에 겨운 배부른 소리였다! City life은 딱 1년. 참 그립더라.


어른들은 말했다. 회사 근처에 그런거 있는거 나이들면 의미 없다고. 저기요 제가 나이 마흔인데 아직도 이런거 없음 안되겠던데요.

신사옥도 보고 돌아왔고, 봉사활동도 다같이 다녀오고 삼성 조끼 입고 젊은 무리들이 우르르 다같이 활동하니 뭘 해도 신났다.


소속이 주는 즐거움, 회사 이름을 걸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겁고 의미있다. “첫 사회 생활”은 이래서 중요하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 그 안에서 나 라고하는 존재의 자존감과 성취감 이런 것들이 모여서 애사심 이상의 프라이드를 갖게 하고, 나아가서 자기 품위 유지를 하게 해준다.


최소한 교육 기간 동안이라도 그런 가치들이 많이 채워져있어야 현업에서 어떤 리더, 주변 선배들을 만나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당시 나의 회사는 급성장하다보니 신입 공채도 늘렸지만 당장의 프로젝트들을 위해 경력직과 계약직을 무수히 뽑았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수혈이 프로젝트엔 도움을 줄지 모르겠는데 “후배 양성”에는 크리티컬한 영향을 주고 만다.


삼성임에도 불구하고 “부서 by 부서” 현상이 터져버리더라.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삼성맨” spirit을 갖추지 않은 선배들을
마주할때, 2달 가량 삼성 입문 교육을
받아온 신입들은 “멘붕”에 빠진다.


그나마 동기를 보고 일년 버티고, 회사 이름 보고 일년 또 버티다가, 사직서 내면 부서 변경해서 일년 버티다 나가는 동기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회사의 미래만큼 중요한게 내가 얼마나 회사에서 일을 할 줄 알고 성장하고 있는가하는 자기 평가인데, 준비되지 않은 선배가 있는 팀에서 제대로 뿌리내리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


맞다. 혹자의 말처럼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 모든걸 알려주지 않는다. 알아서 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알아서하는게 맞긴하다. 그러나,


최소한 회사가 학교보단 나아야한다. 자기 품위, 비즈니스 매너, 업무에 대한 진정성과 같이 일하는 후배에 대한 업무적인 명확한 지시와 피드백은 하물며 동아리에서도 기본 역할이자 역량인데, 이런 것들을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아 참 안타까울뿐.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는 누군가의 선배다. 좋은 선배 코스프레하라는 건 아닌데 적어도 열심히 들어온 애들 앞에서 품위 유지는 하자.


입문 교육의 끝을 향한, 마지막 주 교육이 진행되어 간다.


아버지가 삼성 임원이라는 것이 교육을 받으면서, 더욱 큰 나의 프라이드가 되었다. 그것이 삼성뽕이든 무엇이든, 초중고대학을 지나 수천명의 구직자들이 구애하고 우리를 뽑아준 이 회사(개인 삶 20년 이상의 역사의 산물!)에서 최고가 되기위해 교육을 듣는 신입사원들에게, 회사를 움직이는 임원들의 카리스마는 선원들과 그에게 딸린 가족들의 사활을 걸고 삶의 운명의 키를 바꾼 선장들 같다고나 할까 그런 뜨거움이 느껴져서, 아빠에 대한 '사회적인 위치'를 여실히 느꼈다.


시간이 흘러 부서배치 희망조서도 작성하고, 중간 중간 퀴즈도 보고, 캠페인도 성공리(?)에 마치며 어느덧 교육도 후반부에 접어들게 되었다. 워낙 애사심도 강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격에 수업 집중력도 좋았던 편이라 주진행 과장님과도 관계가 좋았고, 부진행 선배도 좋게 봐주셨다.


나중에 우연히 인사팀이 되어 주진행 과장님이 교육생 피드백을 쓴 자료를 봤는데, 나는 “쾌활한 성격에 다재다능. 동기들과 어울리며 진중하게 교육에 임함. 아버지가 삼성 임원이셔서 애사심도 높음" 이런 느낌의 평가를 받았다. 잘 봐주셨다 매우.


부서 배치 조서 작성후에는,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제법 진지한 눈빛으로 어떤 사업부에 가고 싶은지, 해당 사업부의 요즘 프로젝트와 경쟁사의 이슈 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모습이 굉장히 생소했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원이라는 건, 회사에 충성하는 존재기때문에 그냥 보내주는데 가서 열심히 하는게 맞다고 배워왔는데, 이 친구들을 보면 이정도의 순수한 욕심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고.


얌전한 친구든 끼가 있는 친구든 부서배치 얘기가 나오면 다들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운명론자인지 방관자인지 고민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괴물들을 많이 만났다. 하나같이 멋진. 내게 자극을 주는.


2주차 한마음 체육대회 때는 반 대항 달리기에서 지고는 분을 참지 못해 주먹으로 땅을 치는 승부욕 괴물도 만나고,

이 친구는 실제로 모든 퀴즈에서 일등을 차지한다. 너무 잘해서 자기가 원하는 본부에 못가고 3지망까지 안 쓴 팀에 가게된다(아마 해당 본부에서 "1등 보내줘라"는 압박이 있었으리라.) 교육생들은 이렇게 1등할만큼 잘하는 애들은 본인이 원하는데 가게해줘야지 본부에서 땡겨가는건 굉장히 별로아닌가?는 여론이 돌며 슬슬 “사회 현실”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형은 어느 날 타이까지 풀정장을 하고와서 주진행 과장님이 물어보니


너무 피곤해서 풀어질 것 같아
정장을 입고 왔습니다


라는 멋진 멘트를 하는 형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좋은 애티튜드를 가진 젠틀맨이었고

이 형은 함께 인사팀에 정말 같이 가고싶었는데 프로젝트 지원부서로 갔다. 현장 OJT도 동기중에 제일 먼저가고 현장 파견도 오래다녀온, 당시엔 굉장히 불운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전 만나니 오히려 그만의 경험이 specialty가 되어 다른 업계로 연봉을 충분히 잘 받고 두번 이직했더라 여전히 멋지잖아, 형!


반 전체 회식 자리에는 3개 본부에서 선배들(예쁘고 잘생긴)이 우르르 와서는 각자의 본부로 오라고 홍보를 시작했다.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생애 처음으로 취하게 마셨던 것 같다. 생일을 맞은 동기를 위해 50명의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고 정신을 잃도록 술 취한 동기를 보면서 꺄르르 웃고-


대학교 때 새터에 가면서 즐거움을 누렸다면아마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
교육은 힘들지만 매일이 내겐 축제였다. 우울할때 위로해주던 카니발의 “축제”, 그 노래의 진짜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자 이제 잔을 높이 들고 그대의 행복을 빌어요‘


교육과정 중 찾아오는 졸업식은 공가였다.

내일 L군 졸업합니다


거의 매일 있는 졸업식인데, 동기들이 그때마다 박수를 쳐주었다. 학교에 가니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 동아리 후배들 그리고 학교 동기들이 잔뜩 축하하러 와줬다.


축하받는게 익숙치 않아서 생일 잔치도 친구들 불러서 한적이 없는데, 이번엔 내가 먼저 친구들을 잔뜩 불렀다. 나도 축하받아보고 싶어서. 마음껏.


대학교 제일 친한 동기가 꽃을 주고 엄마한테 인사하면서 “어머니 축하드립니다. 어휴 전 이번에 취직을 못해서요”라고하니, 엄마는 “아휴 무슨 소리야 더 좋은데 갈건데. 그런 말 하지말어.”라면서 등을 두드려 주셨다. 실제로 이 친구 탑티어군 금융권으로 다음 학기에 취업한다!


며칠 뒤면 교육 이수 그리고 부서 배치 발표.

부진행 선배가 어쩌다 내 옷 얘기를 꺼냈는데, 그룹 입문 교육 종료하는 날 창조관을 나오며 우리 깃수 주진행을 하셨던 대리님이 나와 나란히 걸으면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L군은 옷을 참 잘 입어. 근데 그건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강점이야.
분명 사회생활에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니 앞으로도 그건 잃지마.

그 말씀 잘 받들어서 요즘도 꾸준합니다 선배님들. 나도 옷 잘입는 후배들은(굉장히 소수지만) 열심히 칭찬해준다. 그렇게 힘든데도 자기 품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대견해서.


20대의 난 오히려 40이 기다려졌었다. 그때가 되면 알아서 일도 추스리고, 옷도 누가 간섭안하고, 타인의 눈에 조금 덜 관심을 얻을때니까.
마침내 찾아온 부서 배치의 날

인사팀 교육 담당 선배님이 발표대 앞에 서서, 하나 둘씩 이름을 호명하며 배치된 부서명을 알려주셨다. 희비가 교체한다 정말. 누군가는 환희를 감추려 애쓰고 누군가는 그럴줄 알았다는 반포기, 또 일부는 분노를 표한다.


상술한 1등 친구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배님, 저는 왜 3순위에도 안쓴 본부 발령입니까?“ 분위기는 차가워졌고 선배님은 의연히 대처했다. 대답은 기억 안나지만, 숱한 회사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전형적인 대답이었다(돌아보면 그게 그 상황에선 정답이다.)


마침내 내 순서가 다가왔고 은근히 동기들이 나를 의식했다. 말했잖나. 인문계는 300명중 27명, 갈 수 있는 자리는 인사팀 법무팀 재무팀 마케팅본부 기획팀 프로젝트지원팀(현장 관리), 사업부 지원팀 이게 다니까!


“L군은 인사팀 가지 않을까?”
“에이 L오빠는 무조건 주진행이지”


동기들의 평가들이 사실 부담이었다. 나도 가고싶은 곳이지만, 이런 주변의 평가에 일치하지 않을 경우의 실망감이 너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교육 과정 중에 단 한번 진행된 실무자 면담의 순간이 떠올랐다.


일과중에 부진행 선배가 잠시 불러서, 과정 준비실에서 주진행 과장님과 얘기를 나눴다.
L군아, 인사팀 썼나?” 네 맞습니다


“교육 파트 차장님이 잠깐 좀 보자고 하시니, 부담없이 편하게 만나봐. 평소처럼 말씀드리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차장님은 180이 넘는 키에 곱슬머리를 넘기신 미남형이셨다. 주진행 과장님과 셋이 앉아서 잠시 얘기를 나눴고, "(차장님) 면접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하자." "(과장님) 에이, 이 친구한테는 이것도 면접이죠."라며 시작한 담화는 10분이 안되게 진행됐다.


교육 업무를 하고 싶나, 왜 인사팀이 되고 싶고 어떤 면에서 본인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회사가 성장세인데 이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포함한 임직원 교육에 제일 중요한게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이런 류의 질문을 주셨고, 면접의 연장답게 그러나 조금은 편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답변 드렸다. 혹시 같이 일하게 되실 분일수도 있는데, 면접 때처럼 굳어있으면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조금 편안한 단어와 톤을 유지했다. 얘기를 들으시고는 알았다고 올라가셨다. 별다른 피드백이 없으셔서 "아 이렇게 인사팀 지원한 친구들은 한번씩 보시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플랫폼에서 기차가 들어오면 한대씩 타고 떠난다. 다만, 부서배치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기대감보다 긴장감이 훨씬 큰 순간이었다. 어디로 보내질까. 어디로


가나다 순으로 결국, 내 순서가 찾아왔다. 인사팀 선배가 내 이름을 호명, 배치가 발표됐다. 모두가 주목하는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L사원님, 인사팀 교육파트 배치입니다.


와아아아!! 동기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며 박수를 쳐줬다.
우리 반에서 누군가 배치를 받았을 때 모두가 박수친 건 그 한번이 전부다.

아직도 기억난다. 정말 생생하게. 저 멀리 K군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아보고 있었고, 같은 조원들은 내 어깨와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줬다. 인사팀 선배님은 "응? 좋은거예요? 모르겠네."라며 반어적인 조크를 날리셨고, 동기들은 내게 악수를 건내며 인사를 했다.


"여어~ 주진행!"


모두가 축하했다! 당연하지!

나름의 specialty가 있는 법무, 재무 파트를 제외하곤 왠만한 인문계열 신입사원들은 인사팀을 희망했다.

특히나 그룹교육 3주, 계열사 교육을 4주 들으면서 가장 처음 그리고 오래 접하는 선배들이 삼성의 인사팀이니까, '주진행'의 멋짐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가장 삼성다운 부서에서 젊은 사람들을 매년 대하니까.


우아한 백조같은 그 모습, 얼마나 멋진가?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원하는 부서의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다니.. 세상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리 잘 풀린적이 있던가?


위에서 말했던 그 멋진 형, 함께 인사팀가고 싶었던 형은 다른 부서 배치가 되었다. 사실 그 순간에는 형 얼굴을 보기가 좀 민망했는데 끝나고 먼저 와서 축하 인사를 건내더라.


"축하한다 L군아, 네가 정말 잘 어울려."

가장 기억에 남는 축하였고, 멋진 인사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참 멋진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도 형에게 축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렇게 6주간의 모든 교육을 수료하면서,

나는 개선장군이 되어 회사의 가장 높은 층, 20층에 있는 인사팀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중에 삼성 인개원에 들어가서 그룹의 인재교육을 담당하리라는 아주 거대한 꿈을 꾸면서, 저 높이에 있는 20층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동기들과 마지막 회식을 하러 다함께 걷는 마지막 퇴근길을 즐겼다.

인생은 너무 거친 실타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실타래가 드디어 하나의 긴 끈으로 풀리기 시작했고, 가장 아름다운 패턴을 그리며 가장 높이에 걸리게 된 것이다. 기세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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