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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입문 교육, “생소한 사회 생활-경쟁편”의 서막

그룹 교육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by 알렉스키드

그룹 교육을 마친 설 연휴에 휴무를 줘서, 며칠 휴식을 취한 뒤 계열사 입문 교육에 돌입했다. 동갑인 사촌도 당시 LG에 취직을 해서, 기분 좋게 모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사촌과 나는 대학을 한번에 못 들어가고 같은 시기에 들어갔는데, 그때 아빠가 매봉 베니건스에서 밥을 사주면서 힘내라 이런 말씀을 같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촌도 당시 미니홈피에 아빠랑 밥먹은 사진을 올리면서 멋진 큰 외삼촌 이런 이야기를 썼던 기억도 나고.


그룹 연수의 행복한, 따뜻한 순간은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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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남들 다하는 그 흔한 어학연수, 휴직도 한 번 없이 달려온 우리 정말 고생하지 않았냐. 덕분에 이제야 밝은 미래를 잡았다며- 우리는 쓰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6년전의 그 시작점과는 완전히 다른 시작점을 자축했다.


아직 초딩인 사촌동생들을 우리 회사 근처 카페에 데려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형 회사 앞이라고 사진도 찍어주고 로비도 구경시켜줬다. 아직 어린 동생들이지만 전자 다니시는 작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형이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인식은 충분히 잡혀있더군. 하하.


할머니에게 취업 선물로 '새빨간 내복'을 사드렸다. 파는 곳이 없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고, 할머니는 그것을 입어보이시면서 연신 기뻐하셨다.


그때까진 신혼의 단꿈처럼, 아직 매일 같이 회색 트레이닝복 입고 간식 먹으면서 웃고 떠들던 그룹 동기들과 매일 단체톡을 하고, 교육 기간에 받은 월급으로 어디에 돈을 썼는지 이런 얘기들을 하며 연신 “우와” "대박" 이런 리액션 릴레이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주로 소비쪽의 대화가 많았다.


갤러리아에서 명품 코트를 샀다는 친구는 평소처럼 버스에 탔다가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명품 코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아 나는 괜찮은데 이 옷에게 미안하다”며 그대로 내려서 택시를 탔다는 둥 이런 류의 "이전과 다른 나"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는데, 거부감 없이 그런 것들이 너무 웃기더라.


동기 모임에서는 '저런데는 누가 가나'했던 높은 가격대의 술집도 서슴없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 즐거움은, 당시 어떤 친구들과도 공유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그룹 동기들과 더더욱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단 같은 삼성이라 그런게 아니다. 나는 그대로지만 내 소속이 바뀌어서, 취직 준비중인 친구들과 말이 안통하기 시작한다.

호의로 내기 시작한 술값이 당연시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일년이 넘어가면 좀 부담 되는게 사실이고, 그래도 그쯤되면 친구 모임에서도 취직한 친구들이 생겨나서 부담을 나누거나 아니면 그 무리끼리만 따로 톡을 파서 논다. 왜? 그게 편하니까.


나도 내 쉬는 시간에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
친구들도 취업한 비슷한 처지를 만나게 되고
그런 최적의 조건이 바로 그룹 동기인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성인되서 술 없이 친해진 친구인데 돈버는 처지도 같고 대학보다 더 큰 유대감을 주는 그룹 동기인데. 날이 갈수록 친할 수 밖에. 아직까진 회사 스트레스를 얘기할 시즌이 아니었지만, 회사의 힘든 일 이야기할때가 되면 직장인 vs 취준생 친구가 확연히 나뉘고, 거기서 선택은 당연 회사 친구들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지나면(본격적으로 회사의 스트레스가 닥치면) 그렇게들 이성 친구와 헤어진다. 말이 안통하니까! 답답함은 아니고 아쉬움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요즘의 이야기를 못한다는 아쉬움. 서로에 대한 말 못할 불만과 아쉬움이 쌓이다 결국 헤어지는 커플이 많더라.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짠! 하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돈과 소속이 두가지가 주는 만족감은 생각 이상으로 매우 크다!


그렇게 중고교 동창, 대학 친구들에서 '회사 친구'와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 무렵, 나는 '내가 합격한 회사' 입문 교육에 입소하게 된다. 검은 정장에 하얀 셔츠를 입고, '비즈니스 캐주얼'을 강조하는 사전 안내문을 받아 들어서 타이는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쩌나 싶었는데, 그룹 입문 교육 내내 선배들이 노타이를 한 모습을 봐와서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캐주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좋은 교육효과. 보여주는.


회사는 이전에 말했듯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8차선 대로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땐 부랴부랴 일어나서 62-1 버스를 타고 달려갔는데, 입문교육 첫날은 편안하게 걸어서 회사에 갈 수 있었다.


교육장은 3층이다. 그룹 연수 때 같은 반이었던 동기에게 연락이 왔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행히 그룹 연수 같은 조였던 두명이 다 우리반인 상황.(정씨 한명, 이씨 두명) 반이 3개인데 나머지는 어디에 있을까? 급격히 사세가 성장하면서 모든 공간이 부족하여, 군인공제회관 대림아크로빌 등 주변 건물부터, 글라스타워 푸르덴셜생명 등 다양한 거점을 임대하여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총 450명이 선발된 우리 깃수, 상반기 1,2차(150명)는 이미 현업에 배치된 상태였고 우리는 3차였다.
3차 150명이 3개 반으로 50명씩 나뉘어 있었고, 우리 주진행 과장님은 누가봐도 삼성맨.굉장히 교양있는 FM이었다. 꿀성대에 좋은 애티튜드를 보여주시니 모든 후배들이 좋아할 수 밖에.


3개 반에 인사팀의 대리과장급이 '주진행'을 담당하고, 각 사업부서에서 대리급 선배가 '부진행'을 맡는다.


주진행이 강사님과 전체 교육생들에 대한 큰 관리를 하시면, 부진행은 실무단에서 과제 관리, 퀴즈 성적 관리, 기타 교육생 간의 이슈 들이 있는지 현장을 관리한다.


3개 사업부에서 업무적으로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대리급 선배들이 오니,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을 물어본다. 선배들은 깔끔하게 '자기 사업부 홍보'보다는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현업의 분위기, 방향성 등에 대한 대답을 준다. 문돌이인 나와 몇몇 동기들은 그저 주진행 과장님을 보며 "인사팀에 갈 수 있을까?"하는 기대 반 우려 반만 가지고 있을 뿐.


그룹교육 땐 '어디로 갈지'가 정해져있으니 편하다. 이제부터는 회사 내에서 '어디로 갈지'가 정해져야 하기에, 퀴즈든 홛동이든 모든 것이 실전이다. 절대 만만치않다는 시작점.


시작은 좋았다. 3,4차수 총 300명 뽑는데 경영지원(문과) 계열은 딱 27명 뽑았다는 채용 대리님의 말씀에도 기분이 좋았고(뭔가 선택받은 느낌!), 첫날 자기소개 이후 반장 선발을 위해 손을 들었는데, 거수 투표를 위해 잠시 지원자끼리 강의실 밖에 나가있었는데 한 여사우가 말을 건다.


왕자님, 여기서 뵙네요.
저도 같은 교육 들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00차 건설연에서 계셨어요?

"왕자님, 저도 건설연이었어요." 이렇게 두세명이 먼저 말을 걸어준다.

반갑기도 하고, 평소에 행실 잘해야겠다는 무서운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근소한 차로 반장은 다른 친구가 됐고(이 친구가 끝까지 반을 잘 챙겨줬다), 조 배정 후 이제부터는 각 조 중심으로 강의도 듣고, 조별 과제도 진행하게 됐다. 당시 유행하던 UCC 제작부터 입사 당시의 회사 가장 큰 캐치프레이즈였던 "VISION 2020"에 관련된 캠페인 제작/활동까지.


배치된 조원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여사우 두명에, 남사우 여섯명까지 우리 조는 총 여덟명. 이렇게 한달간 같이 시간을 보낸다. 두번째로 어린 여사우가 조장을 맡고, 기타 각자 역할을 나눠 갖고 그날부터 낮에는 강의를 듣고, 일과 후에는 종종 조별 활동을 하면서 한달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엔 그룹동기들하고만 술 약속을 잡던 회사 동기들이, 어느새부턴가 퇴근하고 한잔씩 하고 쇼핑도 가고 이성 고민도 털어놓는다. '관심사'가 하나로 맞춰지니 이만한 친구가 또 없다.


여담으로 조장과 인사할 떄 표정이 너무 안좋아서 무슨 일 있나 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고나서 본인피셜


나 오빠랑 같은데서 그룹 교육 들었는데,
나 그때 오빠 완전 재수 없었어.
가디건도 두르고 완전 허세남 같아가지고.


그러던 인간이 같은 계열사에 같은 조 배치가 됐으니 너무 짜증났다나. 푸하하. 하지만 딱 3일만에 완전히 친해져서는 생각이 바뀌었단다. 이만큼 첫 이미지가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나? 나중엔 제일 친한 동생 중 하나가 되었음. 만나면 몇시간씩 배 잡고 웃고 떠드는!


다만, 이 기회를 통해서 대학교 때 그저 웃고 넘겼던 허세남 이미지를 인위적으로라도 안보이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 또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이랄까. 아무래도 키가 커서 튀는 외모에, 옷도 좋아하다 보니 허세남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고 쉽게 받아들였는데. 그나마 이런 경우는 동등한 처지인 동기고, 같이 교육을 받으니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사회 생활은 그렇지 않다. 바로 옆 파트라 할지라도.


남에 대해서 두번 이상 주의깊게 보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사람들은 첫 인상을 신경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에서 학교와 사회의 차이가 발생하는구나.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게 그룹 교육의 설레임, 여운을 안고서 계열사 사내 입문 교육을 받으며 동기들을 알아 갔다.

처음엔 모두가 그룹사 동기들 밖에 없다. 왜냐면 같이 자고 뒹굴었거든. 계열사 입문 교육은 교육을 듣고 각자의 집으로 퇴근하기 때문에 그룹 동기만큼의 끈끈함은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회사'와 '업'에 대한 교육을 들으며 부서 배치에 대한 고민을 하며 관심사가 공동의 것으로 좁혀지게 되고, 수원, 화성, 용인 등에 펼쳐져 있는 그룹 동기는 주말에 보니까 주중에는 같이 교육받고 퇴근하는 동기들과 약속을 잡게 된다. 퇴근하고 서울에서 모이니까 강남역이든 가로수길이든 테헤란로든 못 갈 곳이 없다! 요즘 표현으로 '힙하고 비싼'데는 다 가봤다 정말.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아주 약간씩 '제일 좋은 계열사'라는 은근한 자부심들도 있어서 같이 누리는 공동의 무드가 있어서 좋았음.


돈을 버니 가장 신나는 건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스카프, 타이, 머플러, 구두, 부츠, 자켓을 사들였고 덕분에 '옷 잘입는 신입' 이미지를 굳혔다.


입문 교육은 비즈니스 매너, 회사의 이해 등 그룹 교육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결국 "어떻게 이 회사가 커왔고 여러분의 역할은 무엇이다"라는 내용이 Core Value였다. 그 하나의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서, 많은 임원분들께서 바쁘신 와중에 신입 직원들을 보기 위해 강사로 참여하시고 신기하게도 모든 교육생들이 임원의 강의 때는 조는 사람 하나 없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정면을 응시한다.


손에 꼽히는 대학 나오고 집안도 잘 나가는(회사가 타워팰리스 단지 내에 있었는데, 타팰 살아서 여기 왔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음) 동기들이 임원 앞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이는구나.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뭔가 전율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열정적이구나.


1주차 내내 임원들의 강의를 들으며 회사가 어떻게 컸는지, 요즘의 업황과 우리 회사의 현 위치를 들으며 자부심도 느끼고- 경쟁사들의 포지셔닝 등 '그냥 교육이 아닌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리소스'를 챙기는 교육을 1주일 간 들을 수 있었다. 그룹 교육때 제일기획, 삼성전자의 임원이 강의를 오면 '아 임원이다' 정도의 생각만 들었는데, 우리 회사의 임원분들이 주는 교육을 들으니 "꼭 저런 분이 되어야지"라는 애사심과 프라이드가 생겨난다. 그들과 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회사의 주인이 된 그런 기분.


이제 계열사 교육이 1주차를 지나 2주차로 향하고 있었다.

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들은 동기라는 이름으로 하나되어 가고 있었다.


교육장 밖의 많은 선배들이 우리를 궁금해하고, 또 벼르고 있다는 사실은 저 편에 둔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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