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꽃, 신입 그룹 입문 교육
201X년 크리스마스 이브, 그룹 교육행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안국역 래미안갤러리로 향했다.
대학 4년을 경복궁 역으로 다녔는데,
새 시작도 바로 옆이구나
원래도 의미 부여를 굉장히 많이하는터라,
새벽 버스 탑승 시간에도 크리스마스 이브날 소집임에도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찾을수 있었다.
인상깊게 봤던 영화 ‘세렌디피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 모든 우연들이 모여 인연을 만드는.
그렇게 도착한 래미안갤러리의 “같은 삼성맨들”. 와. 신기하게 정말 다 느낌이 비슷하다.
인터넷에서 보던 것처럼 삼성형 인물이 있는지, 이래서 “삼성 면접관중에는 관상을 보는 사람이 있다”라는 도시괴담이 취준생 카페에 돌아다니나보다.
삼성 합격, 그 감동의 스토리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43
시커먼 점퍼를 입고 다들 검은 머리(입문 교육용 염색/컷)를 하고 적당한 긴장감으로 버스를 탄다
조별로 20명 조금 안되는 인원이었던 것 같다.
숙소는 3명씩 배정이 되는데, 나는 전자에 취직한 동기 두명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굉장히 어색한 사회 생활 첫 친구들과의 인사를 마치고, 각자 자리를 정해 짐을 풀었다.
(2층 침대 하나, 1층 침대 하나가 있었다. 서로 양보하고 눈치보면서 각자 침대를 차지했고, 내가 키가 크니까 1층 침대를 쓰라는 배려 넘치는 결론. 그런데 창문 앞이라 외풍이 심해서 초코파이 박스로 바람을 가리며 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인데, 이 친구들을 처음 대할때 굉장히 어렵더라. 그냥 대학 강의나 외부활동에서 만난 것처럼 편하게 대해도 될텐데, “회사”에서 만난 사람인데 그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예의를 갖추다보니 어색하게 대하게 됐다. 처음부터 잘놀껄!
3주의 시간을 함께 보낼 룸메 두 명,
하나. K대 출신 동갑 친구
- 8학군 S고 출신, 호탕하면서도 섬세한 공대생. 전형적인 의리파. 여자 동기들도 굉장히 편하게 대하던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스타일.
- 답답한 상황을 나서서 개선하려하고, 개인보단 단체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면에서 나와 꽤 비슷. 하기 싫은 것도 단체를 위해서는 양보하는 면도 있고.
- 나중에 알고난 사실인데 처음 인사할 때 굉장히 내가 꼴보기 싫었다네.(뭐 첫인상 얘기는 하루 이틀 듣는 얘기는 아니었으니)
- 교육 퇴소 후 많이 친해져서 같이 술도 많이 마시고, 메신저 그룹챗/동기 MT도 제일 많이!
- 지금까지도 전자를 잘 지키고 있는.
둘. 지방국립대를 나온 한살 어린 동생
- 진지하면서도 예의가 되게 바른 친구
- 교육 기간 내내 이층 침대 쓰면서 “형들 일어나세요”하고 막내일 도맡아 하던 고마운 녀석
- 초반에 영 파이팅이 없어 왜그러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유사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굉장히 착잡해하던. 그 말을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상이몽.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내가 대학 신입때 저랬겠지 싶었다.
- 이 친구도 전자 잘 다니고 있다. 지방 근무자라 작년에 11년만에 만났음! 이 무심한 놈아! ㅎㅎ
그렇게 통성명을 마쳤다. 내 계열사를 듣더니 동갑 친구가 “와 거기에요?”하는데 뭔가 모를 부심? 도 살짝 챙길 수 있었다. 정말 잘나갔다니까 그때
룸메와 인사를 나누고 조원들과 하루종일 강의도 듣고 조별 활동을 하며 끈끈해질 수 밖에 없다. 생각보다 출신 대학이 굉장히 다양했고, 학교보다는 계열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 회사는 우리 조에서 세명. 적지 않은 수였고 이들과는 지금도 친한 고정 멤버가 됐음
전자가 대다수긴하나 제법 생소한 계열사들도 많이 있었다. 제일기획이나 모직 같은 관심있는 분야의 계열사 친구들이 없었던 게 사실 꽤나 아쉬웠음. 어떤 친구들이 다니는지 궁금했는데.
모 대기업은 교육때 술도 주고 그런다던데 삼성은 일절 없었다. 그저 같이 밤잠 쪼개가며 회의하고 프로젝트 완성해나가는 것만으로 끈끈해진다. 싸울 법도 포기하고 잘만도 한데 이 친구들은 그런 법이 없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지지않으려
그렇게 다같이 애쓴다. 제법 멋지게.
조장도 뽑고 역할도 나누고, 초반에 조 포스터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고, 율동도 만드는 등 오그라드는 활동도 진지하게 임한다. 그러다보면 또 재밌고 경쟁의식도 생긴다.(승부욕 제로의 나같은 사람마저도!)
매일 어제의 점수로 1~3 등 조를 발표하는데, 우린 중후반에 가서야 처음으로 1등을 하게 되고 조장(막내 여동기)은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 진짜 펑펑 울더라
시상대에 나가서 울면서 1등조 깃발을 흔들며 조장이 우는 사진이 한동안 동기 그룹채팅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즐거웠다. 그렇게 된다!
2주차쯤 되면 재밌다. 사가에 맞춰서 율동도 추고, “맨발의 청춘”, “질풍가도“같은 노래에 맞춰서 군무도 추는데 이것도 조별 컨테스트를 한다. 나이먹고 다같이 춤추는게 뭐가 그리 신난다고 새벽까지 몸치들 가르치느라 땀이 흐른다.
강남역에 “밤과ㅇㅇ사이”라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맨발의 청춘" 맞춰서 똑같은 춤 추는 사람들은 다 삼성 공채였다. 신나게 추다 같은 춤추는 사람 마주치면 하이파이브도 하고 그랬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연대의식“
85제를 내세우는 삼성답게 8시부터 모든 일과가 시작됐다. 아침에 졸린 눈 비비며 모여서 Morning Spark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 EBS 지식채널부터 국내외 가장 트렌디한 지식, 상식들을 공유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가서도 이런건 잘 챙기는게 좋다는 인식을 만들어주는, “좋은 습관이 좋다는 걸 자연스레 체득하게하는” 그런 교육들은 지금 되돌아봐도 치밀하게 잘 짜여진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삼성만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그만큼 교육에 투자하고, 교육을 존중하고, 가치를 높게 산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문과생들은 그룹교육과 계열사 교육을 들으며 “주진행”을 꿈꾸게 된다. 이런 교육은 태어나 한번은 꼭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땀흘리며 극기훈련도 하고, 현장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그걸 담은 삼성카드 직불카드를 하나 나중에 주는데, 아직도 내 사무실에는 그 카드가 있다. 그룹의 모든 자원을 굉장히 지혜롭게 활용하는구나.
드라마 삼성 이후로, 모르는 동기들에게도
나는 “ㅇㅇ님”이 되었다. 이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재미있고 호기심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다니.
그룹 교육의 꽃은 역시 “드라마 삼성”이었다. 맨날 보면 깃수마다 신데렐라하는 조가 있는데 이번엔 우리 조였고, 왕자님은 나였다(푸하하. 왕자라니!)
삼데렐라가 서인영의 신데렐라 춤을 추는 요정의 도움을 받아 새신발을 신고 왕자님과 결혼하는 뻔한 스토리. 그럼에도 진지하게 전문가를 붙여줘서 발음 동선 호흡도 잡아준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주인공 컨셉으로 까칠한 느낌을 내는 정도였는데, 다음날 점심 시간에 식당에서 “인사 캠페인”을 하던 다른 조 조원들이 인사했다.
“왕자님 맛있게 드세요!”
저녁 강의를 들으러 엘리베이터로 뛰었는데, 사람이 꽉 차 못타고 옆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같이 뒤에 타고있던 조 동기가 문 앞의 사람들이 속삭이는 걸 들었다고 웃으며 전해줬다.
“야 왕자님, 왕자님. 저기 걸어올라간다.”
하하. 이런 관심 나 정말 너무 좋아한다고.
아무래도 키도 크고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좀 차갑거나 깍쟁이라는 첫인상을 받는다는데(그것이 결코 불편하거나 나쁜건 아니다), 왕자님이라는 캐릭터는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기억하고 불러주는 인격을 허용해준 계기가 되어줬다.
즐겁고 힘든 과정들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삼성카드에서 직원이 나와서 패밀리카드 소개를 하고 카드 만드는 것을 권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심지어 서류까지 돌림. 그냥 쓰는 애들도 많았음.) 우리 조 담당 선배가 말했다.
“저는 저렇게 쉽게 영업하는 건 싫어요.”
같은 삼성 사람이라고 저렇게 쉽게 자기 실적을 쌓도록 놔두는 것은 이해할수 없다는 그런 소신.
오.. 정말 멋졌다. 잘 모르는 후배들에게 아닌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런 자신감.
“저런 선배가 되고싶다”는 그림을 그리게하는게 진짜 교육인데 그런 선배를 교육에서 만나도록 인개원에서 잘 데려오는구나.
집합 교육이 길다보니 중간에 한번 외박을 한다. 상술한 “직불카드(5만원)”로 엄마 누나한테 아구찜을 샀다. 오만원 한방에. 되게 기분 뭉클하더라.
삼성 참 일잘한다고 지금 와 느끼는건, 이렇게 젊은 친구들로 하여금 프라이드,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다.
내 삼성 연수생 사진이 담긴 삼성카드로 소중한 사람에게 밥을 사게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어느덧 3주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각자가 속한 계열사 입문 교육으로 향하게 된다. 진짜 마지막 날은 눈물 흘리는 동기도 있을만큼 너무너무 아쉽다. 내 인생에 이렇게 합숙까지해가며 술도 없이 친해질 사람이 다시는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다같이 힘든 과정 이겨낸 정이 너무 고맙기도 하는 그런 순간..
전자 임원의 꿈을 꾸던 강원도에서 온 동생,
자기는 삼성빠가 아니라 아이폰 쓴다던 시니컬한 똑똑이 친구,
벌써 세번째 회사의 입문 교육을 받는다던 동갑내기 친구(이 친구는 삼성에 남았다) 모두 아쉬움이 가득한 순간을 맞이했다.
아쉬워말고, 우리 나가서는 우리끼리 술 많이 마시고 더 재밌게 놀자. 고마웠다 정말..
즐거웠다는 인사를 서로 건내며 우리는 마지막 밤을 창조관에서 보냈다.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떠들며 우리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갔던 수학여행 마지막 밤처럼,
우리는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꿈과 웃음을 나누었다. 순수한 청년들의 시간. 이대로 시간이 멈춰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