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덕분에 어린 시절의 아픈 과거들을 떠나보냈다
이번 글에서는 2013년 유럽 출장 당시 찍은 사진들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색감이나 화질은 카메라보다 덜 하지만,
뭐랄까요. 그 날의 감격들을 담으려면 아무래도- 날 것 그대로가 좋아서요.
첫째. 대학생 시절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해외 출장'의 로망을 이뤘다.
'우리나라에 출장 와서 삼성역 주변을 조깅하던 외국인'들처럼 나도 가벼운 차림으로 아침 조깅을 즐길 수 있었다.
둘째. 해외 체류 생활을 못해본 내가, 현지인들의 삶을 함께 경험했다.
서울에서 명성만 듣고 못가본 Paul 베이커리(대학생이 쉽게 사먹기엔 비쌌고, 호텔 로비에 있어 거리감이 있었음)를 발견, 조깅이 끝나고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을 사 먹었다. “가족과 함께 먹을 빵을 사러 온 현지 아저씨들” 틈에서,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로망이 제법 컸기에, 더욱 즐거웠다.
아빠가 아이들을 깨워놓고 차를 몰고 갓 구운 빵을 사서,
출근하기 전에 다함께 먹고 아이들을 차로 등교시키는 TV에서 본 그 장면!
현지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함께 숙소를 나서고, 파트너사의 사무실에서 같이 회의하고, 그들이 식사하는 사내 식당에서 매일 그들이 먹는 점심 메뉴를 함께하고, 악수를 나누며 다함께 퇴근하는 그들의 보통 날
이만큼 내 로망을 이뤄준 회사, 특히 나를 이번 출장에 추천해주시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현장에서 보여주신 선배님들이 너무 고마웠다. 하루종일 고생하신 선배님들(부장님, 대리님)에게, 보상을 드리고 싶었다.
그 보상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는 아래에
일 잘하는 선배님들께 현지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뭐라도 찾자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까지 가는 모든 대중교통, 관광지에서의 동선, 레스토랑과 주요 스팟을 머릿속에 완벽히 숙지하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지도까지 챙겨서 선배님들이 기다리는 호텔 로비로 달려나갔다.
L군, 잘 부탁해요!
부장님의 웃음으로 “유럽에 처음 온” L군 투어가 시작되었고, 나는 머릿속에 그리던 그림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조깅을 하며 두번이나 본 거리 아닌가. 그래. 바로 저기에 트램 정류장. 인터넷으로 본 것처럼, 무인 발권기에서 티켓을 세 장 사서 저 멀리 다가오는 트램을 탔다.
대리님은 계속 창 밖을 보시며 거리를 구경하셨고,
부장님은 연신 이런 시간이 익숙치않으신지 연신 내게 덕분에 좋은 경험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부장님. 두분 너무 고생하셨어요.
내일도 일찍 끝나면 더 좋은데로 모실게요!
신나서 나도 모르게 던진 한마디에, 스스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나 편하게 생각하는 그대로 말을 건냈고, 두 선배님도 “그러면 좋겠다”며 오히려 내 말에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정말 좋은 사람들.
그토록 내가 바라던 일도 잘하면서 관계에서 인간미를 보여주는 선배,
작은 것도 칭찬해주는 그런 모습들이라서, 지금 함께 보내는 이 시간들이 너무 감사했다.
우선은 두 분을 모시고 걸어가면서 간단히 이 지역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이드처럼.
와. 이런 모습이구나. 이게 유럽이구나.
걸어가면서, 설명하면서(나도 처음 와봤으면서!) 보이는 모든 건물과 라인강의 모습들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보인다. 그 적당히 산만한 소음마저도 음악처럼 들리던, 조용한 유럽 소도시의 작은 부산함이-
'회사 사람들과는 거리를 둬야 숨쉴 틈이 있다'고 생각한 내가, 자처하여 회사 선배들을 모시고 왔고
'퇴근하면 어떻게든 회사를 잊으려 노력하던' 내가, 출장을 보내준 회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붉은 시청건물은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웅장했고,
로뎅의 오리지널 작품이 남아있는 미술관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초등학생 때부터 방문 버킷리스트인 대영박물관보다 멋지고 가치있었다.
도로 한 가운데로 트램이 여유롭게 지나간다.
노란색, 갈색의 트램이 지나갈 때 마다, 신호등은 빨간색으로 켜지고 차들이 멈춘다.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 아빠,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는 연인,
신호를 건너는 내내 신나게 누군가와 한참을 통화하는 학생들.
나도 그들과 똑같이, 퇴근하고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관광으로 왔다면 아마 다소 실망감을 느낄 법한(스위스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풍경이 아니니까) 장소였지만, 그토록 소망하던 외국에서의 “보통 날”이 내게 주어졌다는 것이.
주요 스팟을 안내드리고, 몇가지 설명도 첨했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제안을 건냈다.
보여드린 코스에서 편하게 시간 보내시고,
1시간 뒤에 여기서 다시 모이겠습니다
무리가 각자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미술관까지 걷기로 했다.
라인강에서 사진도 찍고, 그 너머 작은 마을들의 지붕색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가득 담아둔다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미술관까지 걸었고, 마당에 전시된 작품을 한참 바라볼 수 있었다.
벽돌로 둘러쌓인 골목, 그 골목과 어우러지는 현대적인 건물- 그 안에 들어서니 조각상이 서 있었고, 마치 건물에 둘러쌓인 듯 작품과 하나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것으로 충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저 멀리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카페들을 비추는 커다란 유리 건물들에 라인강과 성당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걸쳐두고 혼자 사진을 찍었다
성당이 보이는 라인강에서, 시청앞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되어 선배님들과 다시 모였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인도 한잔씩 하면서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저 우리는 라인강의 고요함, 길을 지나며 본 성당의 멋진 색,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시청의 모습과, 흔들리는 촛불 너머로 보이는 저 구불구불한 골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고, 우리는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을 기대하며.
나는 어제와 똑같이 아침에 조깅을 하고 Paul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먹었다.
고작 3박 4일의 출장- 그 중에서도 첫날은 오후에 입국하고 마지막날은 오전에 출국이기에,
완전히 누릴 수 있는 아침을 가장 나답게 보내고 싶었다.
그 날의 회의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리는 어제보다 더 빠른 시간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부장님, 취리히로 모시겠습니다!
"L군, 취리히라고요? 갈 수 있어요?"
"금방 갑니다. 제가 다 알아봤어요. 가시죠!"
취리히. 말로만 듣던 그 설레는 이름!
알프스, 제네바, 그리고 취리히- 어릴때부터 TV에서 봐온 스위스는 이정도였다.
나는 알프스보다 취리히에 가보고 싶었다. 산보다 평지를, 바다보다 호수를 좋아하는 내게
취리히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열차를 타고, 취리히로 향했다.
취리히까지 가볼 줄은 몰랐다며 4자리가 마주보는 열차에 앉아서, 대리님과 부장님은
웃음을 잔뜩 띄고 스위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울수 있었다.
20대의 대리님, 30대의 나, 그리고 40대의 부장님-
같은 회사, 같은 프로젝트라는 것 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이미 관심사가 많이 다른 나이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 취리히로 향하는 기차에 다같이 타서는.
어릴적에 '세계를 가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봤던 스위스 취리히의 모습에 대해서,
이원복 교수님의 '먼 나라 이웃나라' 책에서 봤던 스위스의 퐁듀에 대해서,
서로의 유럽 여행의 추억, 취향을 이야기하며 '세대를 초월한 시간'을 함께 만들고 있었다.
마치 친구들처럼
이윽고 기차가 멈췄고, 우리는 취리히 중앙역에 내렸다.
높은 언덕에서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붉은 색 가디건을 어깨에 두른 채
저 멀리 보이는 성당과 교회의 첨탑을 향해 앞장 서서 걷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호수가 눈 앞에 펼쳐졌고, 그 길을 따라 호숫가의 노천 레스토랑에 다같이 앉았다.
파스타를 포함한 몇가지 음식들을 주문했고, 탄산수를 마셨다.
탄산수를 가득 채운 잔에, 호수를 비추는 햇살이 부서졌다.
식사를 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주변의 주요 공간을 소개하며
각자 가진 계획을 웃으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행에서 만난 사이처럼.
식사를 마치고 케익과 커피를 주문했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달콤한 맛과 파아란 하늘의 모든 순간들.
그 순간만큼은 음악도 사진도 필요 없이, 그저 나를 감싼 모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홀로 즐기는 것을 택했다.
맥주와 핫도그를 사서, 호수 근처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한모금을 마시고 핫도그를 먹고, 호숫가에 앉은 많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끌어 안고 속삭이고 있는 연인들, 담배를 피며 기타를 치는 또래 친구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 사이에서 나는 다가오는 오리들에게 빵을 떼어주고,
두 팔로 머리를 베고 완전히 누워서는 하늘을 계속 바라봤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줄 수 있을까
이렇게 행복하게 혼자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던가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비취고, 잔잔한 호수의 물결 소리만 귀에 울렸다.
꿈이 없던 20대 시절에도, 가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럽이다.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스위스, 취리히라니!
언제 또 이렇게 유럽 출장을 오게 될까.
나는 그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여유를 느낄 수 있을까. 그때쯤 되면, 내 나이는 몇 살일까?
이미 삶에 지친 채로 시간이 나면 호텔에서 10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하는, 그런 "아저씨"가 되어 있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부장님처럼, 후배가 웃으면서 여행을 제안할 수 있는 그런 겸손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어릴적부터 회의적이었던 나는 '유럽에 갈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
유럽에 갈수도 없으니 저런 프로그램은 보지말자고 생각했고,
이내 그런 패배의식은 좋은 학교에 갈 수 없는데, 좋은 회사에 갈 수 없는데라는 생각까지 발전을 마친
어두운 젊음이 되어갔지만-
그렇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당시 내가 갈 수 없으리라 생각한 회사에 취직했고
그 회사에서 보내준 유럽 출장지에서 멋진 선배들과 함께 멋지게 회사를 대표해 일을 마쳤고,
20대 시절 언제나 감상에 빠지던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껏 감상에 젖어있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 내가 이뤄온 것들이 인정받기 시작했고,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남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감성'은 자조가 아닌 '자랑'으로 변한 것이다.
10대와 20대의 아픔들이 모두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
그런 행복한 나를 마주한 순간이 바로 지금 펼쳐지고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호수의 시간,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생각보다 연착이 된 기차 덕분에, 우리는 숙소까지 조금 걸었어야했지만
누구하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마지막 밤을 다같이 웃으며
꼭 대학교 선후배 사이처럼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걸어갔다.
맑은 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내일 아침 집결 시간을 정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될 그 날을 기도하며,
나는 스스로를 루저로 만들어 온 내 젊음과 완전히 이별하는 밤을 맞이했다.
그래. 내가 이뤄온 많은 것들에 대해 인정하자.
어두운 날들, 슬픔이여 안녕- 암울하던 과거를 보내고 앞만 바라보자.
고작 3일간의 스위스 출장이지만, 인생에 대한, 회사에 대한 많은 것이 변했다.
최근 3년 간 젊은 나를 고민하게 만든 회사가, 이번 출장을 통해 이십대 시절 루저였던 내 아픈 젊음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치유할 생각조차 못하던 오랜 기억들로부터 해방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초등학생 시절 들었던 곡을 정말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코나의 '슬픔이여 안녕'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감은 눈 아래로 슬몃 미소를 짓는 내 얼굴에선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