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삶을 보상해주던, 30살 나의 유럽 출장
이번 글에서는 2013년 유럽 출장 당시 찍은 사진들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색감이나 화질은 카메라보다 덜 하지만,
뭐랄까요. 그 날의 감격들을 담으려면 아무래도- 날 것 그대로가 좋아서요.
신입사원 시절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업무 담당자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열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강의장 청소, 교안 정리, 다과 구입 등 현장의 가장 기초적인(화려하지않은) 일을 배우고, 조금씩 준비가 될수록 강사 섭외 및 응대, 프로그램 기획을 함께 선배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통해, 직장 생활에서 늘 가져야할 “핵심 업무에 대한 갈증”과 자세를 체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업무에 대한 마인드와 비즈니스 애티튜드를 배운 뒤, 현업의 경험을 통해 회사 내 업무 스펙트럼을 확장하고자 했던 열의를 잘 봐주셔서 현업 프로젝트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대 출신이 담당하는 업무를 맡게 되니 모르는 것 투성이라 떨어지는 자신감을 추켜 세우기도 벅찼지만,
공부하고 물어볼 때마다 “나보단 훨씬 잘 아는” 유관 부서 선배님들이 계셔서 그래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 선배님들이 추천해주셔서,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아보게 된 스위스 출장!
일 잘하시는 선배님들이 그저 '열심'뿐인 후배에게 많은 기회를 주시는게 느껴져서, 감사했다.
벅차고 부끄러울 때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건강한 위기의식"으로 하루 하루 힘을 내던 시기였다. 좋은 선배들을 찾아 다니던 시기.
믿고 따르는 선배들을 모시고 떠난 해외 출장,
“일할 때만 일하는” 스마트한 그들의 배려와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새로운 직장인의 삶을 배운, 가슴 뛰는 이야기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88
평소에 일하면서 모르는게 있으면 귀찮을만큼 이것 저것 여쭤봤는데
(선배지만 여성분이라 나보다 나이도 어리셨다), 그때마다 더 없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뭐랄까, 입사 3년차에 다시 “밑바닥부터 배우려는” 진정성을, 그런 절박함을 이해해주셨던 것 같다. 참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대리님은 그런 나를 굉장히 좋게 봐주셔서,
“L군은 우주 정거장도 짓겠다”며 내 동기와 회의하면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하셨고,
나를 알아주는 선배에게 누를 끼치거나 실망감을 주지 않기위해서 스스로 더욱 동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과잉 의전'을 하지 않도록 두분 다 출국 전부터 배려해주셨다.
도착해서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며 저녁 한끼만 사줄테니
"남은 기간 일과 시간 이후에는 L사원 편하게 지내라"고 하시는 부장님.
본사와 매일 컨택하는 부분에 있어서 여쭤보니, 미팅하면서 정리는 다 해놓을 거라서
귀찮게 저녁마다 브리핑하고 피드백 받을 필요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대리님.
시작부터 선배들의 배려를 받으니 출장 내내 오히려 내 할일을 찾아내게 되었다.
콜로세움도, 에펠탑도 없지만 어릴때부터 TV에서 보던 그런 조용한 유럽의 동네.
붐비는 관광객도 없고, 화려한 프렌차이즈나 네온사인이 버티고 서 있는 곳이 아닌
현지인들이 가족과 함께 사는 곳. '가장 나와 비슷한 직장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이 도시에서, 가장 가슴이 설레는 첫번째 경험을 도착한 날 겪게 된다.
부장님과 도착하여 첫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많이 본 폰트와 컬러, 이름을 가진 베이커리를 보게 되었다.
"어? 저 빵집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그거구나!"
당시 우리 나라에서 철수한 지 몇년 된 'PAUL' 베이커리가 있는 것 아니겠나!
대학생 시절, 나중에 직장인되면 매 주말 가서 브런치를 먹겠다고 다짐하던 바로 그곳이 여기에.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여의도 M호텔 로비에 위치했던 PAUL 베이커리.
당시 일반 빵집의 2~3배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브런치 손님으로 자리가 없었다.
정작 내가 직장인이 된 시점에는 한국에서 철수하고,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직장인 L군으로서의 로망 한가지'가 없어져버렸는데, 너무 반가웠다!
내일 아침에 방문하리라 다짐하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차범근 축구 감독님이 모 프로그램에서 독일 생활을 회상하며 얘기하던 그 장면이었다.
"아이들을 깨워놓고, 동네 빵집에 가면 아빠들이 출근하기전에 빵을 사러 길게 줄을 늘어섰다.
기다렸다가 갓 구운 빵을 사서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먹고 출근했다"는 바로 그 장면
새벽에 알람이 울리고, 나는 후드티에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편한 복장)
낯선 도시를 한바퀴 뛰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고서,
오. 정말 폭스바겐 같은 차들이 가게 옆 도로에 죽 늘어서 있고,
아빠들(로 추정되는 아저씨들)이 캡을 눌러쓰고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빵을 사가고 있었다.
크롸상을 포함한 몇가지 빵과 물을 사서, 매장 전면이 보이는 큰 창문 앞 자리에 앉았다.
20대에 꿈도 못꾸던 좋은 직장을 가진 30대 직장인이 되었다.
졸업때까지 도전하지 못했던 유럽, 회사에서 보내준 출장으로 도착했다.
동경하던 여의도 호텔 로비의 그 빵집을, 출장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 빵집에서 출근하기 전 현지 직장인처럼 갓 구운 빵을 사서 먹고 있다.
꿈을 꾸던 20대 시절 즐겨듣던 음악을 들으며 '가장 아름다운 그림의 중심에' 내가 앉아 있다.
몇 시간 뒤, 회사의 일을 하기 위해서 몇 달간 메일로 컨택하던 파트너사 직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이다.
존경할만한 선배들을 만나, 현장에서 일을 배우며 같이 성장하고 추억을 쌓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모든게 완벽할 수가 있다니.
일하러가서 무슨 감상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었다.
그간의 고단함과 마음 고생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 한순간 만으로도.
첫날의 감동을 뒤로 하고, 파트너사의 공장으로 방문했다.
"Welcome, Samsung"이라는 환영 인사를 정문에서 맞이했고,
간단한 커피, 티 몇잔이 준비되었고 점심은 그들의 사내식당에서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음. 현지에서 경험하는 그들과 동일한 점심 식사)
부장님, 대리님이 프로페셔널하게 현지 파트너사 직원들을 상대로
완벽한 첫날 미팅을 마치는 모습을 옆에서 참여하며 넋이 나가있다가,
미팅을 마치고 숙소를 향하는 택시 창밖을 보니 이제야 저 멀리 노을이 시작되려는 시간이었다.
그제사 정신이 들었다.
고마운 선배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맛있는 저녁,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내가 느낀 선물같은 이 감동을, 선배들에게도 드리자.
선배들이 부담스러워 정중히 거절한 출국 전 공항부터의 의전은 수행하지 않아도,
‘가까운 도심에서 분위기 좋은 저녁’ 정도는 알아봐두는 센스를 발휘한 터였다.
혹시나 일찍 일과가 마무리될 경우,
호텔에서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도심, 소소한 관광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요즘이야 구글맵 등을 통해 길안내가 잘 되어있지만,
10년전만해도 대중교통 루트를 알기 위해서는 국내 포털, 블로그와 카페를 찾아헤맸어야했다.
그 느린 와이파이를 붙들고 정보를 취합한 뒤에, 문서와 이미지로 소중하게 담아두었다.
택시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두분의 의사를 여쭤보았다. 정중하게.
부장님, 대리님. 고생하셨는데 오늘은 맛있는 저녁 드시죠
제가 알아둔데가 있는데, 트램타고 몇 정거장이면 금방 도착합니다.
대리님은 흔쾌히 좋다고 하셨고,
부장님도 우리 둘의 눈치를 오히려 보시더니 긍정적으로 답 하셨다.
그래요. 두분이 괜찮으면 저도 같이 가요.
“네, 숙소 들어가셔서 정비하시고, 30분 뒤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조금 걸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운동화 준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태어나 처음 도착한 유럽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갈 짬을 냈다는 것!
하루 내내 선배들을 도운 일이 없는데, 지금부터라도 뭔가 해드릴 것이 있다는 것!
배울 점이 많고, 친절한 선배라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운이라는 것.
숙소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멨다.
가방에는 한국에서 프린트해온 도심 지도 한 부와
내가 빽빽하게 정리해둔 시청 관광 정보가 들어 있었다.
로비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내려가니, 역시나 선배님 두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부장님, 대리님, 가시죠. 제가 다 알아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