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에 대한 고민보다 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도와준 좋은 선배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당시 삼성에서 대학생들 사이에 가장 가고 싶은,
입사 지망 1위의 회사였고(모직, 기획과 더불어 유일하게 서울에 본사가 있는 메리트도 컸음!)
인문계 학생으로서, 가장 인재 개발 체계가 뛰어난 그룹 삼성의 인사팀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어디가서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일년 반동안 삼성의 인재 개발에 대한 다양한 업무 경험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당시 유행하던 “현업 중심 인사제도”의 일환으로 현업 부서(해외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에 발령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생기가 돋는” 삶이었다. 인사팀에서 배운 기본 애티튜드와 인사이트를 가지고, 회사를 움직이는 현업 업무를 수행하다니.
역량과 지식은 늘 부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배울 수 있고,
하루 하루 부담을 이겨내며 다른 이들과 함께 한 가지씩 해결해나가는
"성취감"과 "연대의식"은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직장인으로서의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신뢰와 기대를 쌓아가다보니,
늘 도와주시는 조달 파트 선배들과 스위스 출장 기회도 얻게 된 것이다.
출장을 가게된, 감동(?)의 이야기는 아래에
https://brunch.co.kr/@alexkidd/87
출장이 결정된 순간 이후로, 출장에 대한 부담감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졌다.
나를 믿어주는 선배들이 준 기회인데,
그렇게 준비한 출장 일정에서,
부장님과 대리님은 시작부터 나의 예상을 깨셨다
인천공항 어디서 모여서 출발할지 문의드리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예상 밖의 그런 것이었다.
L사원, 그럴 것 없이
스위스 공항 도착해서 봅시다
당연히 공항 도착하는 순간부터 “업무의 시작”이라고 판단하여, 어떻게 챙겨드릴지 공항 내 카페, 라운지, 휴게 및 편의 공간을 미리 확인해둔 상황이었다. 선배들이 어떻게 쉴지, 어디서 편하게 출장 업무 준비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보면 나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선배들 스스로를 위한 길을 택했다고 본다.
선배들도 각자 회의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거나, 준비를 마치고 쉬는 등
공항에 도착해서 해야할 일들에 대해 알아서 이미 준비를 끝냈는데,
"따로 또 같이"의 가장 좋은 사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할 때만 같이 일하고, 쉴 땐 각자 쉬자는 스마트함!
과잉 의전이 애초에 없어왔던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업무의 범위가 훨씬 효율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리무진 버스 탑승부터 공항 도착, 수속 및 대기 모든 활동에 있어 상시 의전을 수행하고, 액션 플랜과 세부 사항에 대한 브리핑 등, 일을 위한 일을 한가지 더했을텐데, 두 분의 선배들 덕분에 출장 시작부터 굉장히 짐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스스로를 위한 배려 덕에, 나도 편안하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의 배려에 괜한 멋쩍은 웃음을 스스로 지으면서, 기내식도 편하게 먹고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열일곱살때부터 서른세살 때까지 일기를 썼다. 다 쓸때마다 노트를 새로 사서.
스무권이 족히 넘는 일기에는 내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일기장을, 결혼하면서 다 버렸다. 소중한 일기장을 대체 왜 버렸냐고?
펼쳐봐야 즐거운 이야기는 없고,
'어딘가에 얘기할 수 없는 어둡고 깊은 감정'에 대한 반복 뿐이라서,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고 싶었다.
이런 '아픈 감정의' 일기장에,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다.
입문 교육 시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즐거움보다 더 성숙한 기쁨.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계속 가보고 싶어졌다.
내 미래에 대한 설렘에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굉장히 조용한 도시.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잠시 모여,
내일 아침에 모여서 출발하기로 시간 약속을 잡았다.
(최대한 간단히, 내일 아침의 동선과 스케줄, 회의 아젠다를 공유했다.)
대리님이 올라가시고, 부장님이 저녁을 먹자고 하셔서 짐을 풀고 내려갔다.
10분 먼저 도착했는데도, 로비에 이미 부장님 혼자 편안한 복장으로 앉아 계셨다.
"부장님, E 대리는 안왔습니까?(압존법)"
"네. 내가 그냥 숙소에서 쉬라고했어요."
"아 정말요? (약간 당황) 혹시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인사팀일 때 하도 상사에게 당해서
이때까지만해도 상사가 따로 부르면 잘못에 대한 훈계를 미리 예상했다.
L사원이 출장 준비하느라 고생해서 저녁 한번 사주려구요.
출장기간동안 일과 끝나면, L사원 혼자 시간 보내도 되요.
업무 시간 외에는 편하게 지내다 갑시다. 나 신경쓰지 말고.
내가 잘못 들은건가? 외국계 회사에서나 가능할 법한(당시 내 기준으로) 말씀을 부장님께 듣고 있다니.
잠시 당황한 차에, '부장으로서의 격식'조차 느껴지지 않는 너무나 편안한 복장을 입은 부장님께서는
'의전 필요 없는 자세로' 유유히 산책하듯 호텔을 빠져나와 '아무 레스토랑'이나 들어가셨다.
숙소에서 짐을 풀면서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핸드폰으로 부지런히 주변 레스토랑을 찾아둔 내 노력이 무색해지리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늘 그래온" 편안한 모습이셨다. 공과 사의 구분, 바로 그것.
나는 아직도 부장님과 자리에 앉고, 식사하고 나오던 모든 순간들이 기억난다.
상호도 기억 안나는 그런 레스토랑. 습관처럼 조리해서 내 오는 적당히 따뜻한 식사.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매우 '심심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에게는 그 편안함이 가장 큰 메시지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스위스 출장은, 모든 것이 배움 그 자체였다.
고작 몇박 몇일의 짧았던 이 모든 순간들은 아직도 내게 후배들과 일을 대하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보통의 회사, 그리고 보통의 직장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체득하게 됐다.
다음 날 아침, 호텔 로비에서 모여 회의장으로 향했고, 치열한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를 통해서도 많은 걸 배웠다. 프로의식을 가진 담당자로서의 업을 대하는 태도.
유창한 영어는, 발음보단 논리 : 쉬운 단어로 회의가 진행되었고, 서술보단 팩트 점검 위주
불편한 건일수록 서두에 : 회의 초반에 주요 이슈에 대해 요청 하고, 당일 오후 내 해결하는 '시간 절약'
호의보다 계약이 우선 : 불편한 대화 이후 남는 건 문서화된 결과물. 매일 회의 끝나면 양 측 서명을 받은 회의록을 공유. "계약 관계에서 좋은게 좋은 것은 없다."
확인은 출장 일정 내 : '알아보겠다'는만큼 아마추어적인 답변은 없다. 당시에도 컨퍼런스콜이 있었는데, 굳이 항공료 내가면서 출장 온 이유는 '현장에서 결론 짓고 오겠다'는 뜻. 너무나 대응 준비와 논리가 완벽한 선배들을 보고 나중에 내가 저 위치에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프로 의식을 배웠다.
그렇게 전쟁같은 첫 미팅 하루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저, 부장님, 대리님.
오늘 고생하셨는데 맛있는데서 저녁 드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