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What to do> by Paul Graham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Y Combinator 창업자 Paul Graham이 작성한 <What to do>라는 에세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제가 올해 읽은 에세이 중 가장 탁월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Steve Jobs의 철학 "Make Something Wonderful"이 떠오르네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실리콘밸리 대가들의 에세이와 인터뷰를 번역한 글을 매주 수요일 저녁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쓸모 있는" 글만을 보내드린다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는" 글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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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무의미하거나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은 아닙니다. 오히려 '쓸데없이 거창한 질문은 하지 마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듣기 전에,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던지곤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죠. 저 역시 다른 것을 탐구하던 중 이 질문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마주친 이상 최소한 답을 찾아보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당연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끼고 돌봐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두말할 필요 없이 명확한 원칙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일 만한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요? 제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질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남을 돕고 세상을 보살펴야 한다는 당위성을 증명할 수 없듯이, 이 창조 활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삶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이 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일은 바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어쩌면 우주 만물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수준 높은 사고를 했다는,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제대로 된 생각의 결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훌륭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새로운 것'이라는 개념을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아이작 뉴턴이 정립한 물리학 이론도 훌륭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원칙을 처음 구상했을 때는 '좋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충분히 포괄적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가령 예술이나 음악을 창작하는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경우에만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술 작품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녹아들 수 있지만,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우리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도록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지 않는 한, 그것이 예술 활동의 전부는 아닙니다.
심지어 의식적으로 도출해 낸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저는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듭니다. 최고의 사고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들도 물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획기적인 발견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모형으로 만들거나 글로 표현해낼 수 없다면, 그것을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자신이 이해한 바를 표현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이해도를 입증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해를 심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표현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문구가 우리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끌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직접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더 높이 평가하게 만듭니다. 물론 비판적인 의견도 아이디어이며 때로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지만, 스스로 그 가치를 과대평가하기 쉽습니다. 비평은 세련되어 보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은 특히 초기에는 어설프고 미숙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희귀하고 값진 것은 바로 그 첫걸음입니다.
새로움은 정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남의 논문을 몰래 베껴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인상적이지 못한 수준을 넘어 비양심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그림의 복제품이라 해도, 원작이 주었던 깊은 감동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어도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감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그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다만, 이 원칙에서 말하는 '해야 한다(should)'는 앞선 원칙의 성격과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세상을 보살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의무(duty)로서의 '해야 한다'이지만,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꽃피우며 살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해야 한다'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따라야 할 삶의 규칙들은 이 두 가지 성격이 혼합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전자의 의무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고대 로마의 키케로에게 묻든, 중국의 공자에게 묻든 거의 일치했습니다. 현명하고, 용감하며, 정직하고, 절제하며, 정의로워야 하고, 전통을 지키고,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한동안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신을 섬겨라"가 주된 답이 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현명함, 용기, 정직, 절제, 정의를 갖추고 전통을 수호하며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조차 이 방식을 옳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통적인 답들에는 세상을 돌보는 일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전통적인 답변에 세상을 돌보는 내용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환경을 염려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전통적인 답변들이 약간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최근 몇 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지침의 청중은 대개 토지를 소유하고 정치를 주도하던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물리학을 할지 소설을 쓸지 선택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죠. 영지를 관리하고, 정치에 참여하며, 필요할 때 전투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여가 시간에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이상적으로는 여가 자체가 없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은 고전 시대의 훌륭한 답변 중 하나인데, 키케로 본인이 최근의 정치적 혼란으로 공직 생활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2]
물론 당대에도 우리가 "독창적인 작업"이라고 부를 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종종 존경받았지만, 그들이 모두가 따라야 할 롤모델로 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구의 부피가 그것을 둘러싼 원기둥 부피의 3분의 2라는 것을 처음 증명했고, 이 사실에 매우 기뻐했지만, 고대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그를 본받으라고 권유하는 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르키메데스를 일반적인 모범이라기보다는 경이로운 천재로 여겼습니다.
이제 우리 중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아르키메데스의 전철을 밟아, 한 가지 일에 전념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롤모델이 된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당대에는 하나의 뚜렷한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 역시 롤모델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재능은 당시의 사회 계층과는 전혀 무관하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류의 새로운 것이 가치 있는 창조물일까요? 저는 이 질문은 창조하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명확한 기준을 정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일은 종종 초기에 무시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미국의 전설적인 추리 소설 작가)는 한때 그저 값싼 잡지에 실리는 소설(펄프 픽션)을 썼지만, 오늘날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흐름은 너무 흔해서, 하나의 행동 지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세상에서 대단치 않게 여기는 어떤 일에 열정을 느끼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간과하는 가치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냥 해도 괜찮은 일을 넘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떤 기준점도 제시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직함과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의 규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제시하는 삶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과 세상을 돌보고, 훌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 사람마다 이 원칙들을 실천하는 정도는 다를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에 주로 몰두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소수 중 한 명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당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사람이나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면, 오히려 더 큰 에너지와 영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창조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겠지만, 더욱 충만한 힘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당신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경이로운 것을 창조한다면,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종종 사람이나 세상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뉴턴은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가져올 실질적인 영향보다는 순수한 호기심과 성취욕에 이끌렸지만, 그의 연구가 끼친 영향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예외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규칙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놀라운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