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내가 컴퓨터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원문: <Forever&Ever>

by 비즈쿠키

안녕하세요 알렉스입니다.


Paypal의 공동창업자이자 전 CTO인 Max Levchin의 <Forever&Ever> 에세이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런 게 진짜 너드남의 매력 아닐까요?


재밌게 읽으시길!

file_path_host?token=1VP5Bjn8QsmDjZitEoajPX6qwq1KeDUMF%2BZZqiQshwBkxbiQdeq3wxKOxy8H02X6gF3ojUwF6z9TZG3imq12A0UUmJIeCb0oSg%2FaH7a6m%2Bez--H1gPK%2FvaZjI3EDnp--WC4B2wkMwssxe6rno4qG6Q%3D%3D <Max Levchin 출처: Wall Street Journal>



아, 그리고 뉴스레터를 만들었습니다.

실리콘밸리 대가들의 에세이와 인터뷰를 번역한 글을 매주 수요일 저녁에 받아보실 수 있어요 :)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쓸모 있는" 글만을 보내드린다는 것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는" 글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드릴게요.


아래 링크에서 이메일만 입력하시면 바로 신청됩니다 :)


5초 만에 신청하기



<30년 전, 내가 컴퓨터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제가 열네 살이던 1989년의 일입니다. 저는 당시 키예프 통신 전문학교의 첨단 통신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러시아어 약자로 KPTS라 불리던 이 학교는 2년짜리 '기술 전문가' 양성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일했다'는 건, 연구실 책임자를 설득해 필요할 때마다 유틸리티 코드를 짜주는 대신, 퇴근 후에는 그곳의 소련권 컴퓨터 장비를 마음껏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1980년대 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사정을 고려하면, 연구실은 꽤 발전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었지만, 정식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나이는 어렸어도, 재고 관리 프로그램이나 단위 변환기 같은 코드를 척척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상주한다는 건 그들에게 꽤 쓸모 있었을 겁니다. 물론 저에게는 '업무'와 '개인 시간' 구분이 무의미했습니다. 코드를 짜는 행위 자체가 삶의 전부였으니까요. 아, 광섬유 접속 작업을 가지고 놀았던 일도 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해 봄, 개발자 친구가 저에게 "데모" 하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방에는 80286 XT의 소련판 복제품인 번쩍이는 새 ES-1842 여섯 대가 환상적인 EGA 컬러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보통 '데모'란, 하드웨어의 숨겨진 기능을 기발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만든 프로그래머의 기량을 과시하기 위해 치밀하게 최적화된 짧은 코드 작품을 뜻했습니다. 친구가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만든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명령어 입력창에서 실행 파일을 작동시키려 엔터 키를 누르자마자, 저는 온몸이 굳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난생처음 작은 PC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지만, 디지털 샘플링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코딩에 꽤 자신 있었지만, 저는 펄스 폭 변조(디지털 신호를 이용해 아날로그 신호를 흉내 내는 기술)의 원리를 전혀 몰랐고, 일반 데스크톱 PC가 단순한 '삐- 삑' 소리 외에 이런 흥미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몇 초짜리 클립은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당신은 내 마음에 머물러요...(forever... and ever... you stay in my heart...)"라는 구절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두 개의 알록달록한 아스키 아트 나선이 빙글빙글 돌고, 왼쪽 위 구석의 커서는 정신없이 깜빡이며, 무지갯빛 글자열이 서서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멀리 떨어진 다른 코더들에게 작성자의 인사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컴퓨터는 마법이다"라는 생각이 영롱한 6비트 디지털-아날로그 충격파처럼 제 마음속을 울렸고, 저의 인생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남은 삶을 바쳐 컴퓨터가 마법 같은 일을 해내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고작 한 소절만 아는 이 마법 같은 노래를 부른 여가수가 누구인지 간절히 알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몇 년 뒤, 저희 가족이 소련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날 때, 저는 모스크바 세관원에게 3인치 플로피 디스크 보물이 담긴 나무 상자를 두고 가라는 정중한 요구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보관했던 그 데모 실행 파일도 결국 압수당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마법처럼 노래하던 그녀의 정체와, 그녀가 영원히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렬했던 호기심은 희미해졌지만, 그 한 소절의 샘플은 제 머릿속에서 자주 반복 재생되며, 그 모든 것이 저에게 명확해졌던 순간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월드 와이드 웹(WWW)이 모든 지식의 보고가 된 이후에도, 저는 그녀를 검색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마법 같은 기억의 거품이 터져버릴까 염려되어 외면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거의 30년이 흘렀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의 평범해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섰을 때, 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습니다. 드립 커피 한 잔을 사러 갔는데, 그녀는 마치 삼십 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양, 여전히 그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지체할 틈도 없이, 저는 여섯 번의 터치로 Shazam(노래를 들려주면 제목을 알려주는 앱)을 실행했고, 바로 그 마법이 되살아났습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I Say A Little Prayer"였습니다.


Spotify에는 디온 워윅의 1967년 오리지널을 포함해 수십 가지 버전이 있었고, 저는 이후 하루종일 추억 여행에 빠졌습니다. 제 재생 목록을 팔로우하는 두 사람이 단 하나의 소울 곡만 무한 반복되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했겠죠.


다만, 저는 그것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노래는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노래는 맞았지만, 부른 사람이 달랐습니다. 제가 들었던 트랙은 단순한 '삑삑이' 이상을 처리할 수 없던 하드웨어 때문에 소리가 뭉개지긴 했어도, 이 버전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운전 중 (물론, 신호 대기 중에만 했습니다), 세 번의 신호 대기 시간을 이용해 휴대폰으로 미스터리의 마지막 조각을 맞춰나갔습니다. 두 번의 검색 후, 구글은 제 머릿속에 기억을 되살리는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atom.exe, 당시 어떤 어린 개발자가 직접 코딩한 여름 프로젝트 데모였습니다.


마치 갓 십대가 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이번에는 정말로 그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제 휴대폰에서 LTE 네트워크를 통해 스트리밍되고 있는 것은, 텍스트 모드 영상과 커서 깜빡임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지직거리는 음질까지 살려낸 원본을 누군가의 분명히 귀한 수집품일 PC에서 바로 캡처한 YouTube 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댓글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가수는 모린 월시(Maureen Walsh)로, 1988년 Bomb The Bass의 첫 앨범에서 곡을 커버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컴퓨터는 여전히 마법과 같습니다. 내일은 모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생각입니다.



참고자료

https://max.levch.in/post/122649477633/forever-ever

작가의 이전글아마존 CEO의 마지막 주주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