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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Oct 01. 2021

선택이 늦을수록 좋은 이유.

조기 전문화의 음과 양.

일전에 학생선수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엘리트 선수로써 경쟁의 한가운데까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선수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라는 과업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해도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사고하는 능력이 뛰어 날 수 도 있다. 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과거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도 소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을 가졌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공부 안 해도 잘 살 수도 있고 성공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


일전에 수학 물리와 같은 기초과학을 과목을 적기에 배우지 못하면 나아가 기본적인 논리적 사고가 약해진다고 말한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은 논리가 분명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지, 경제학, 법학과 같은 학문보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데 있어 우위에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논리를 키우면 경제상황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법률 논리를 가지면 세상의 다양한 사례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자신의 법 논리적 의견을 논박하는 데 있어 남들보다 자유로울 것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것은 어느 학문에나 그에 맞는 논리가 존재하듯이 수학에도 수리적 논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논리력과 사고력 발달의 기초를 논할 때, 기초학문인 수학, 물리와 같은 기초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경제학이나 법학과 같은 실용학문을 더 강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실용학문이 논리력 향상에 기초학문보다 더욱 유리하다는 근거는 없다. 한 예로 프랑스에서는 수학적 사고가 글 쓰는 능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학생들의 역량을 판단할 때 수리적 논리력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흔히 프랑스는 철학이 유명하다고 알려지 있지만 프랑스의 주요 사회계열 학자들도 수학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수학적 사고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이 논리적인 토론을 펼치고 인간 고유의 철학을 세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17~18세기부터 철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이 시작됐으며 역사적으로 이름을 알린 많은 철학자들은 동시에 수학자이기도 했다.


<마음에도 공식이 있나요>의 저자 조난숙 교수는 수학 해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상담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심리학을 공부할 때 수리적 사고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즉 수학은 논리력, 추리력, 추상적 사고력, 그리고 창의력 발달을 위한 기초 과목이기 때문이다. 이어 그녀는 수학을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한다. 비록 수학 성적은 안 나올지언정 수학으로 훈련된 논리적 사고는 미래의 전공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덧 붙였다. 기초과학은 역사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느 학문에나 그에 맞는 논리가 존재하듯이 수학에도 수리적 논리라는 것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선수 시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부의 끈을 놓았다. 수포자 (수학포기자) 아닌 공포자 (공부 포기자) 였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공부를 했고 결국 은퇴 후에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것은 중학교 때까지의 공부 경험이었다고 말할  있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배운 지식을 확장할  있는 고등학교 공부를 못해서 인지, 결국 대학원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스포츠라는 좁은 영역 안에서 전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좋아서 선택한 전공이 아닌 잘할  있는 전공 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말고 다른 전공분야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내가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를 떠나 애초에 배우지 않았으니까 엄두도 못낸 것이다. 이렇듯 어릴  배움의 폭이 좁을 수록 미래에 적성을 맞는 전공을 고려할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공부를  해서 대단히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신의 적성을 조금  다양한 관점에서 찾을  있기 때문이다. 아래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고 대한민국에서  학생선수가 다양한 과목에 노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시간낭비라는 이유로 진로를 정해야 할 고등학교 때 일찍이 꿈을 위해 올인하는 것이 이로울까? <스포츠 유전자>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그의 최근 저서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서 전문화를 언제부터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볼 만한 근거로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경제학자 오퍼 멜러머드 (Ofer Malamud)가 연구한 전문화의 시기가 직업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


먼저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로 나누어진다. 책에서는 그 중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학제와 스코틀랜드의 학제를 비교 했다. 영국과 웨일스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제한된 분야의 공부에 집중하여 매진할 수 있도록 미리 대학에서의 전공을 택해야 한다. 반면, 스코틀랜드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2년 동안 여러 분야의 과목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한다. 책에서는 이를 학생의 적성을 탐색하는 샘플링과정 이라고 한다.


멜러머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졸업생 수천 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코틀랜드 졸업자들은 전공을 늦게 선택했기 때문에 영국 졸업자보다 덜 전문적이며 기술적으로 덜 숙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일 때는 잉글랜드 졸업자들보다 소득이 낮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없어지고 스코틀랜드 졸업생들은 금방 잉글랜드 졸업생들의 소득 수준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관련 논문). 정말 대학 교육이 단순히 직무와 직업선택에 있어 유용한 기술만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조기에 전공을 정한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대체로 유관분야에 종사해야 맞지만 실상은 일찍 전공을 정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졸업생들의 경우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찍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학생이 가진 기질과 적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고, 학생 조기의 결정이 틀릴 수 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 이와 같이 어릴 때 간주된 흥미와 적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교육정책은 고등학교 때 학생들에게 제한된 목록만을 보여주며 그중에서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책에 따르면 "이는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 여자 친구와 혼인할지 말지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 말한다. 따라서 멜러머드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 관해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일축한다. 이렇듯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학생선수 또한 가능하면 여러 가지 분야를 경험하고 아우를 수 있는 고등학교 시기는 중요해 보인다. 심지어 대학에 가서도 자신의 적성을 찾게끔 돕는 것이 교육의 순기능이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 관해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두 번째로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 소개된 스포츠의 사례를 살펴보자. 엡스타인은 타이거 우즈와 로저 페더러를 경력 발달의 관점에서 비교한다. 흥미롭게도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둘이 각 스포츠에서 탁월한 기량을 갖추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과정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타이거 우즈는 생후 6개월이 지나고부터 운동선수의 재능이 보여 그의 아버지는 그가 4살이 되던 해 골프에 입문하여 아침 9시부터 8시간씩 골프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프로가 될 때까지 골프에만 올인하여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전문화의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대학 입학 전부터 이미 세계적 골퍼의 반열에 올랐다. 반대로 로저 페더러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는 축구, 야구, 수영, 테니스, 탁구와 같은 다양한 운동을 두루 경험하고 우즈나 또래 친구들 보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테니스로 진로를 택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많은 스포츠중에 페더러가 테니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충분히 한 후에 시작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접근방식으로 스포츠를 시작했어도 우즈나 페더러 모두 각자의 스포츠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가 어떤 운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탁월해지는 방법에 대한 접근을 달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골프와 같은 반복적 패턴 훈련과 자로 잰 듯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는 동작들이 중요한 종목은 타이거 우즈가 경험한 조기교육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테니스와 같이 순간적인 판단, 임기응변, 순발력, 파워 등의 다양한 운동능력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어릴 때 여러 스포츠의 경험을 통해 숙달된 운동능력들이 결국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계를 포함하여 몇몇 유명한 천재들은 조기에 전문화를 거쳤기 때문에 일찍부터 적성을 찾고 올인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계적으로 대부분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천재들은 어릴 때 넓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오히려 전문화를 늦춘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운동도 자신이 선택했듯이, 하고 싶은 공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선수 출신이자 스포츠와 같은 응용학문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후배 유소년 선수들에게, "모름지기 스포츠인이라면 체육을 공부해야지"라고 권장하거나 그것이 나중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해주기보다. "너는 지금 운동선수지만 원한다면 다른 사람이 될 수 도 있을 거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공부를 충분히 해보고 경험해 봐야 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아가 "너의 적성 탐색을 충분히 한 후에도 스포츠라는 분야에서 삶을 지속하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육 환경이 아무리 대부분 엘리트 선수의 공부할 의지를 꺾어버린다 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기회를 없애서는 안 된다. 엘리트 선수들의 학업부담과, 일반 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가 오로지 잘못된 한국의 교육시스템 때문이라면, 대다수의 운동선수들이 유관분야의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환경 때문 아닐까? 어쩌면 학생선수 중에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꿈꿀 엄두가 안나는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일반학생들은 왜 고등학교 때까지 적성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과목을 공부해야 할까? 공부만 하는 학생들도 적성에 맞고 필요한 과목만 공부할 수 있게끔 학생의 적성에 따라 과목을 축소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너는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될 머리가 아니니까 수학이나 물리는 배울 필요 없어" 말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개인적으로 자리바꿈이 원활하지 못한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생각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진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에 있는 것과 애초에 방향을 전환할 수 도 없는 고립된 길 위에 있는 것은 기회가 공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운동도 자신이 선택했듯이, 하고 싶은 공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먹고 싶던 우리가 가는 식당이 같은 곳이라면 최소한 메뉴는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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