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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Dec 15. 2019

영국으로 가자.

유학 준비부터 입학 그리고 석사 생활

Image by Annie Spratt from Pixabay 


2017년 4월,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처음 한 일은 일단 '영어공부 하기'였다.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면 당연히 국가나 혹은 지원하고 싶은 대학이 요구하는 영어시험을 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TOEFL (토플), 영국이나 호주, 캐나다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IELTS (아이엘츠)라는 영어 능력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학교에 따라 요구하는 영어시험은 차이가 있으니 찾아보길 바란다). 유학을 위한 영어시험의 기준은 해당 학교나 나라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 최소한의 준비가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시험에 통과한다고 해서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보장하진 않는다. 공부를 시작할 당시에 내 영어 수준은 단어만 읽을 줄 알았고 be 동사와 일반동사의 차이점도 구분할 줄 몰랐다. 강남에 있는 유명한 학원과 개인과외까지 약 10개월 간의 준비기간 (유학자금 탕진)을 거쳐 학교가 요구하는 조건에 조금 못 미치는 성적으로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갔다. 2018년 3월에는 대학에서 운영하는 프리과정(어학코스)에 등록해서 또다시 영어시험 지옥으로 뛰어들었는데, 학교가 요구하는 점수에 계속 미달하는 바람에 이건 졸업 걱정이 아니라 입학 걱정을 하게 되는 뭔가 이불킥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유학 간다고 큰소리는 쳐놨고.. 별의별 걱정에 시달리다 이러다 시작도 못하고 갈 수도 있다는 걱정에 정말 다시 한번 이를 꽉 깨물었지만 이빨만 더 아팠다. 하지만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6개월간의 어학코스를 마치고 마음을 비우고 본 마지막 시험에서 다행히 점수가 나와줬다. 그렇게 간신히 손톱 끝으로 절벽에 매달린 심정으로 2018년 10월 석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학한 첫 주에 오리엔테이션을 참여한 날, 교수님의 기본적인 코스 소개가 끝난 후 간단한 학생들끼리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그때 "나는 한국에서 온 현(Hyeon)이고 영어 이름은 Alex 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렇지만 한국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은 대부분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래 그것도 맞다). 영어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이 산만 넘으면 석사 공부는 내가 관심 있는 것을 하니까 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영국 석사는 현지 영국인들도 힘들다고 느낀다는 것을 입학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석사 (2년)는 코스웍이 시작되면 첫 주에는 과목별로 오리엔테이션이니 뭐니 해서 일종의 적응기를 제공하지만, 영국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간단한 소개를 끝으로 다음날부터 빡빡한 석사 일정이 시작된다. 이미 전공에 대한 흥미와 적응은 학부에서 끝냈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 주부터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번째 주부터는 과제를 쏟아 붓기 시작한다. 말이 1년 코스지, 중간에 크리스마스 랑 부활절 (Easter holiday) 휴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9개월 동안 엄청 빠른 템포로 전문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일주일에 4~5일 동안 진행되는 수업, 한 달에 최소 1~2 개의 영문 리포트, 에세이 (평균 1000~1500자) 그리고 실험 등등 빡빡한 스케줄 한가운데 놓이고 학생들은 수시로 Module handbook (시간표 및 과제 제출 마감일이 명시되어있는 핸드북)을 확인하면서 하나씩 순서대로 과제를 해 나가야 한다. 해야 할 과제를 제 때에 시작하지 않으면 (유학생 입장에서는) 데드라인을 맞춰서 제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영국인들도 힘들어한다). 석사생에게 기대하는 능력 중 하나는 전공지식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Time-managing)' 도 포함되는 것 같다. 자칫 안일한 생각으로 자잘한 과제들을 미루고 상대적으로 배점이 큰 시험이나 논문으로 나중에 만회하려고 하면 큰 코 다친다. 왜냐하면 과제와 시험 그리고 길게는 논문까지 모든 것이 다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논문을 쓰면서는 첫 학기에 했던 과제를 참고해야 할 상황이 생기고, 시험공부를 하면서는 과제를 하면서 찾아놓았던 자료들을 다시금 들여다봐야 한다. 뭐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하나 예상치 못한 난관은 바로 시험 때문인데, 앞서 말했듯이 과제를 미루게 되면 시험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과제도 같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상상만 해도 아찔). 영국식 시험의 특징은 손으로 쓰는 논술 형식의 시험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시험은 대형 체육관에 수백 명이 모여서 한 과목 당 약 2시간 동안 치른다. 내 전공의 경우 영양학 이었음에도 객관식 시험은 전체 모듈 중 한 과목 정도 (문장으로 답해야 하는 문제도 함께)이고 심지어 통계 시험의 답도 단답형이 아니라 논술 형식으로 답변해야 했다. 더 큰 산은 바로 '시험 범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여태 껏 수업에서 배운 모든 범위가 시험 범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특정 범위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것을 물어보는 학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모듈당 한 학기에 12주 정도의 파트를 공부했다면 그중에 10주 차 수업내용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코멘트만 해준다. 사실상 10주 차 수업내용을 제외한 모든 수업 내용이 잠재적인 시험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시험 범위가 있는 유형의 시험도 존재한다). 과제는 시간을 두고 기본 전공 지식과 메커니즘을 이해한 뒤에, 관련된 연구의 근거와 함께 나만의 비판적 생각을 논거로 제시하면 되지만, 그에 비해 시험은 지정된 시간안에 요구하는 답을 써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뚜렷한 요령이 없다고 느꼈다. "제한된 2시간 안에 내가 그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기억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석사과정을 누가 공짜로 시켜주면 다시 한번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 시험에 대한 기억 때문에 때려죽여도 다시 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타고난 기억력과 지능이 있다면 물론 유리한 영역이지만, 절대적인 시간투자도 여전히 유효한 변수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그래서 나는 머리보다는 엉덩이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체력이 지능이다. 


시험공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보자면, 내가 다녔던 학교는 수업 내용을 학교 온라인 계정에 녹화를 해놓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들은 이 녹화된 수업을 보며 반복적으로 시험공부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방대한 수업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요약하고 또 요약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험을 앞두고 시험공부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첫 수업부터 매 수업내용을 그때그때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는 그 요약한 내용만으로 자주 반복해서 머릿속에 넣는 것이다. 꼭 한 두 과목 정도는, 유독 긴 에세이를 (400~800자) 요구하는 시험이 있는데 이 같은 경우는 다행히도? 어느 정도 주제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 주제를 이용해서 약 800자 정도의 분량의 에세이를 2시간 안에 써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떠오르는 생각이나 답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와 예시를 기초하여 이와 관련된 연구자 이름, 연구년도 등을 외워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4가지의 토픽 중에 2가지의 토픽이 나올 것이라고 시험 전에 알려주면, 나 같은 경우는 4가지의 주제를 모두 시험 한 달 전에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를 해 놓은 다음에 반복해서 통으로 외웠다. 시험은 펜으로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대부분 손으로 쓰면서 외웠고, 두 번째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으면 타이핑으로 외우는 방식으로 했다. 신기한것은, 유독 이해하기 어렵고 힘들었던 과목에서 점수가 가장 높게 나왔다 (면역학 ㅅㅂ). 애매하게 아는 것 보다는 아예 모르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영국 친구는 시험기간만 되면 밤을 새우는 나를 보면서, 공부방법이 잘못됐다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충고를 해줬고 나는 그냥 알겠다고 했다 (과학적으로는 백번 맞는 이야기). 보통 시험기간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최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치르는데, 우선적으로 시험 날짜에 따라 순서대로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고, 내가 취약한 과목은 매일매일 조금씩 공부해 두는 것이 좋다. 추가해서 과제나 시험의 배점이 과목마다 상이해서, 배점이 좀 더 높은 과목에 시간을 많이 투자 하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배점이 낮은 과목 또한 신경써야 한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과제와 시험 점수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잔인한 시험 구조 덕분에 최소한 내가 배우는 전공 안에서의 지식은 대부분 습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스스로 찾아보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교육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누가 뒤에서 나를 미는 것 같은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면, 이제는 논문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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