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채점 방식과 논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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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교육시스템과 한국 혹은 미국의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채점 방식' 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비교를 해보자면 일반적으로 한국은 채점을 할때 100점 (A+) 에서 감점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하지만, 영국은 점수를 매기는 기준을 0점에 두고 점수를 더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한다. 둘 중 어떤 방식이 더 좋은 채점방식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차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70점을 넘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전체 평균 70점이 넘으면 Distinct (first), 60점 이상은 Merit (second-first), 50점 이상은 (Master's degree pass) 로 간주하고 50점 밑으로 내려간 과목이 하나 혹은 두개 (어떤 과목이냐에 따라) 이상일 경우, 재시험을 보거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점수이상을 무조건 충족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단 재시험을 보게 되더라도 재시험의 만점은 50점으로 제한 되어 있다. 따라서 First 로 졸업하는 학생은 한해 과에서 5~10 퍼센트 밖에 되지않는다. 그러니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 점수가 70점 밖에 안된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모든 코스웍을 마치고 약 3개월 정도 논문 (dissertation) 을 작성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나의 전공 (스포츠 영양학) 은 대부분이 실험연구로 진행되었다. 아주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라면 개인주제를 직접 선정해서 데이터 수집부터 연구방법까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현재 박사학생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참여한다. 약 한달정도의 기간동안 데이터 수집 및 실험을 하고 (이 기간에 전반적인 논문의 도입부; introduction 와 연구방법; methodology 를 써놓는다), 이 후 최종 결과를 받음과 동시에 결과 서술과 논의 (discussion) 파트를 써내려 간다. 이 과정에서 담당 교수님은 논의 부분를 제외한 도입부, 연구방법, 결과 이 세가지 파트중 두가지 파트에 대해서 첨삭을 해준다. 하지만 이 첨삭은 바로 제출이 가능한 완성된 버전으로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수들만 간단하게 짚어 주고 코멘트 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최대한 완성된 버전으로 들이밀어야 한다. 알아서 고쳐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개떡같이 써넣고 (예: 문법, 맞춤법 등등) 맡기면, 먹기좋은 개떡으로 돌아올 뿐이다. 영국교수들은 본인의 강의스케줄 소화 및 프로젝트 진행과 학생들 과제 및 시험 채점, 더불어 학부생 석사생, 그리고 박사논문 지도 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느라 진짜 너무 바쁜 것 같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 쯤에는 학생들이 교수에 대해 온라인으로 평가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게 꽤 중요한 것 같다), 교수님들은 학기내내 학생들에게 친절히 성심성의껏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자본주의 미소 남발). 하루는 내가 논문일정이랑 글쓰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더디게 쫓아가다 보니,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이메일을 보냈는데, 내가 질문한 것들을 최대한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예를 들어, 논문작성에 있어서 관련 논문 레퍼런스나 왜 이 연구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주 친절히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 짧게 코멘트를 해주고 관련 논문에 대한 링크를 보내주는 식이었다. 이렇게 주고받은 이메일을 나는 하나로 모아서 나만의 글쓰기로 다시 정리해 놓았다. 이렇게 한 결과, 최종 논문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어드밴티지로 작용했는데, 하나로 정리하고 나니까 논의 파트에서 비판적으로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탄생하였다.
논문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논문 많이 읽기' 이다. 1) 첫번째로 자신이 쓰려고 하는 논문의 연구 분야에서 가장 최고 권위자를 찾고 관련 연구자의 논문을 최대한 많이 찾아 읽어본다. 이렇게 함으로써 쌓인 데이터는 관련 연구분야의 연구방법과 동향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며, 내 논문에서 써내려갈 도입부분 (Introduction) 의 틀을 구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도입부에서의 핵심은 이 연구가 왜 필요한지 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2) 두번째로는 영어로 논문쓰기에 있어서 숙달되지 않았다면, 다른 연구자들이 써놓은 문장들을 옮겨서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연구자들이 근거를 제시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일련의 맥락 (context) 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논문을 쓸때 머릿속으로 한국식 문장으로 바꿔쓰는 오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문장으로 paraprasing (글의 어구를 다른 방식으로 풀이하는 것)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주어와 목적어의 순서를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의 의미를 지키면서 완전히 다른 문장으로 만드는 것을 이야기 한다. 따라서 나만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논문을 많이 읽고 써보는 수 밖에 없다. 3) 세번째로는 논문을 작성하는데 있어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능력 이외에 부수적인 능력이 요구되는데 예를들면 엑셀, 통계, 그리고 그래프만들기와 같은 작업에 있어 능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연구결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만약 숫자를 사용해서 연구결과를 서술해야하는 경우라면 더더욱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고, 혹여나 숫자를 실수로 잘못 기록하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어적으로 실수하는 것은 외국인으로써 충분히 수용가능하지만 , 숫자를 잘못 계산하거나 틀린 유닛을 (예., kg, cm, etc.)기록하는 것은 점수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숫자를 잘못 기록한다는 것은 곧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얘기와 같다. 4) 네번째로 중요한 것은 논의부분에서 근거에 따른 자신의 의견을 다른 연구자의 연구결과와 비교해서 자신만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인데, 핵심은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결과에 따라 다른 연구들의 결과와 함께 어떤 입장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A 연구자는 축구선수의 체리주스 섭취가 근육 회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를 제시했다. 하지만 B 연구자는 근육의 회복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발견했다면, 과연 체리주스 섭취가 축구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꼭 섭취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라고 하는데, 비판적 사고의 유무가 과제와 시험, 그리고 논문 점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 다시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독 (多讀) 은 필수중에 필수이다. 시간이 많다면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글을 쓰는데 유리하겠지만, 우선 논문을 최대한 많이 읽고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해외유학을 상상하면 영화에서 처럼 수업끝나고 한손에는 전공책을 들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거나 도서관에 가는 것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각자 하는 일을 하러 가거나, 수업만 끝나면 어디론가 다들 사라진다. 사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노는 시간은 1년간의 영국석사생활 중에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유학생이 영국에 와서 축구도 보고, 친구도 여럿 사귀고 알바도 하는 것은 학부생일때나 그나마 가능한 이야기다. 석사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공부를 제 때 잘 끝내고 싶다면 되도록 좋아하는 취미나 여행은 좀 미루는게 좋다 (졸업은 해야하니까). 위와 같은 내 경험은 학창시절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기초부터 쌓아가야 했던 나만의 경험이기 때문에 영국 석사유학을 준비하는 모든 학생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운동선수 출신이거나, 공부와 담을 쌓았던 친구들에게는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영어와 유학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근거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나는 잘하겠지?' 정도의 마음이었지, '나는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기 때문에 유학을 가도 잘 해낼 거야.' 와 같은 포부는 아니었다.
위와 같은 일련의 팁은 내가 논문을 쓰면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부분들과, 주변에서 석사를 먼저 공부한 친구들이 알려준 조언들을 종합해서 서술한 것이다. 따라서 나의 경험이 앞으로 영국에서 공부를 하게될 학생들에게 똑같이 유용하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서의 다른사람의 경험들의 정보는 낯선환경에서 공부를 함에 있어 일종의 방향설정을 위한 척도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도 유학을 준비하고 또 적응하는데 있어 그저 하나의 정보로서 활용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