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틱 (Skeptic)을 읽고.

회의주의자처럼 생각하기.

by 이현성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스켑틱 (회의적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완독 했다. 저자 마이크 셔머 (Michael Shermer)는 미국의 과학 저술가이자 우리 사회에 만연히 퍼져있는 비과학적 믿음을 의심하고 바로잡는 팩트 경찰이다. 그는 유사과학, 창조론, 미신의 허상을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맞서는 회의 주의자 이자 무신론자이다.


스켑틱 표지


본 도서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성술, 대체의학, 유사과학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에서부터, 정치 치, 철학, 종교와 과학의 필요성과 쓸모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때는 몰랐지만) 유사 과학과 미신 속에 둘러싸여 그것들을 일정 부분 신봉하며 살아왔었다. 물론 미신적 믿음과 유사과학이 우리의 삶에 도통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쳤을 때는 비이성적 사고관이 형성되어 우리가 삶을 사는데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쓰거나 자원을 낭비케 한다. 가령 어머니들이 자식의 앞길을 위해 매일같이 절에 가고 삼천배를 올리는 것, 사주팔자를 통해 결혼을 반대하는 것 등이 있겠다. 삼천배를 올려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일은 운동장 몇 바퀴 뛰는 것으로 대체할 수 도 있으며, 사주팔자를 나쁘게 점지해준 무속인 또한 고객의 니즈에 맞춰 말해 줄 뿐이다. 고객들은 아마도 점 짐에 들어설 때부터 본인이 듣고싶은 쪽으로 뉘앙스를 풍겼을 가능성이 있다.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 고객이 또 올 것이 아닌가.



책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들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 믿고 있는 확신들은 실험적인 증거나 논리적 추론과는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저 유전적 측면과 문화적 영향 등을 포함한 인생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믿음을 형성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미 형성된 자신의 믿음을 무시하고 사실로만 판단하고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미 존재하지만 다만 그 사실을 개인의 가설, 직감을 거쳐 왜곡된 편견을 가진다는 것이다. 고로 자신이 그 사실이 본인이 믿고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


"이는 확증편향이라 불리는 현상으로,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2002년 4월 격년으로 내는 보고서를 통해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게 나온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 보고서는 미국 성인의 30퍼센트가 UFO와 외계 문명이 보낸 우주선의 존재를 믿으며 60퍼센트가 초능력의 존재를, 40퍼센트가 점성술이 과학적이라고, 32퍼센트가 행운의 숫자를, 70퍼센트가 자기장 치료가 과학적이라고, 그리고 88퍼센트가 대체의학이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켑틱, p 104-


놀라운 것은 대체의학 같은 경우는 대학 졸업자의 92센트가 효과적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자 89센트보다 높은 수치다 (배울수록 확증편향에 더 쉽게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저자는 이 같은 결과의 원인은 전통적인 과학 교육 방식에 있다고 꼬집는다. 전통적인 과학교육은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가르치기보다는 그저 과학의 결과를 가르친다고 한다. 셔머는 말한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교육받는다." -스켑틱, p 105- 따라서 과학의 근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스티븐 호킹급 지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도처에 널려있는 유사 과학과 미신에 농락당하며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챕터인 '종교의 쓸모'에서는 종교는 사회에 과연 유익한가?라는 물음 던지는데 그것은 개인이 무엇에 기준을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또한 종교적 성향과 정치적 성향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먼저 종교적인 국가일수록 사회적으로 건강할까? 독립 연구자 그레고리 폴 (Gregory s. Paul) 이 2005년에 발표한 <선진 민주 국가에서 국민의 세속주의 종교성이 사회적 건강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국가 간 양적 비교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국가의 종교성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건강도는 오히려 낮아진다고 하였다. 즉 선진 민주 국가 (특히 미국)는 예배의 비율이 높을 경우 살인 범죄율 및 청소년 범죄 그리고 성병 관련 감염률 그리고 미성년 임신/낙태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물론 이는 기도의 형태, 믿는 신의 종류 등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맞는 사실을 아닐지언정, 통계적으로는 근거 없는 믿음이 건강한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종교적 성향에 따른 기부형태를 다룬 것이 흥미로웠는데, 여기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마음이 따뜻하며, 보수주의자들은 다소 무자비하고 냉철할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는다. 시러큐스대학교의 아서 브룩스 (Arther C. Brooks)가 출판한 <누가 진정 남을 돌보는가>에 따르면 소득을 통제한 상황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30퍼센트 더 기부하며. 헌혈과 자원봉사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밝혔다. 위의 국가의 종교성에 따라 사회 건강도가 악화된다는 사실과는 반대로, 종교적인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약 4배 더 관대하다고 한다 (브룩스에 따르면). 고로 사회적 건강도를 증진시키는 요인 중에 종교적이고 온전한 가족 (꼭 소득을 의미하지 않음)에서 자란 개인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책의 내용에 따르면 노동 빈곤층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자신의 소득에 비해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기부를 실천하는 비율이 높으며, 빈곤 계층이라고 하여 사회에 기부하는 것에 인색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에 왜 큰 정부보다 작은 정부가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다. 보통 큰 정부를 지지하는 개인은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이 기부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가난은 기부의 장벽이 아니며, 오히려 복지가 기부의 장벽이다" -p 352-



독서를 마치며 이 책이 내게 준 의미는 우리가 여태 믿어 의심치 않던 가치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있는 이 사회의 무분별한 믿음들은 과학의 실증적인 증거를 통해 다시금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동안 '회의적이다' 혹은 '회의주의'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에 따른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선물 같은 책이었다. 회의주의자들은 확신을 최대한 미루고 끊임없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믿고 있던 가치가 과학적인 사실로 뒷받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로 대체됨으로써 그 가치가 무색해질 수 있다. 과학 또한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만 과학이 아니면 무엇을 믿을 것인가?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믿을만한 발명품이며 이를 통해 합리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