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정말 병들고 있을까?

기술발전과 자본주의가 환경을 회복한다.

by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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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스켑틱에 이어 통계적인 인사이트를 십분 얻을 수 있는 책 <포스트 피크 부제: 지구 착취의 정점, 그 이후>를 완독 했다.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현대 기술과 자본주의 그리고 환경문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저자 앤드루 맥아피 (Andrew MacAfee)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경영대 부교수이자 동대학 디지털 비즈니스센터 수석 연구원이다. 대표 저서로는 <제2의 기계시대>와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가 있으며, 방대한 통계적 근거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다.


출처: Yes 24 블로그


최근 즐겨보는 과학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화두인 환경문제에 대한 사실들을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근거를 통해 통찰한다. 물론 범지구적으로 난리 치는 환경운동을 지지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적어도 환경문제에 있어 실제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1798년 맬서스의 인구론을 언급하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20년대까지 기술적, 환경적, 사회적 현상들을 방대하게 다루기 때문에 모든 챕터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나 새로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위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저자는 첫 번째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행성, 지구를 더 가볍게 딛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나머지는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책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간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파괴했던 두 축이었던 기술발전과 자본주의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손을 잡고 그 악화된 환경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환경 악화는 정점을 지났고 현재의 그래프는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 인간은 여태 기술발전의 명목 하에 지구를 파괴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소비했지만, 결국 그 기술발전의 함의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양상이 바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덜 취하면서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 시골과 도시 중에 어디에 살아야 할까?

마치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조금이나마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그런 운동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소비하는 삶이 아닌 생산하는 삶을 모토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자영농이 많아질수록 물과 비료 같은 자원을 대규모 영농보다 훨씬 비효율적으로 소비하게 때문에 환경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고로 소규모 영농보다는 대규모 농업이 친환경적이며 오히려 도시에 사는 것이 환경문제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더 낫다는 것이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음과 동시에 아파트 같은 에너지 효율적인 공간에 거주한다. 또한 대분의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짧은 거리만 이동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해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이렇게 강조한다. "환경에 좋기를 원한다면, 환경에서 멀리 떨어져라. 콘크리트로 둘러사인 고층 아파트로 이사하라, 시골에 사는 것은 지구를 배려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층건물을 더 많이 짓는 것"이다 (p.125).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이유로 시골에 사는 것은 환경에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지구를 생각하는 환경주의자이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골에 거주하는 것은 당신의 건강에만 도움이 될 것이다.


2. 기술발전과 자본주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늘 더 많은 자원을 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보면 1959년에 우리가 마시는 맥주를 담는 알루미늄 캔의 무게는 85그램이었지만 1988년에는 그 무게가 16그램 미만으로 내려갔고 현재 알루미늄 캔의 무게는 9.5그램 (330ml)에 불과하다. 기업은 더 많은 생산과 수익 그리고 무형적 가치 (환경 및 사회자본)의 획득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자본주의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선진국들이 취하고 사회 경제적 체제이다. 물론 자본주의에도 결점이 있고 완벽한 모델은 아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봤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경제 시스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대한 비판들에 대해 사실적 근거로 논박한다. 에덤스미스는 <국부론>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동기는 인간을 위한 서비스를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며 이는 자본주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스미스는 또 말한다. "동료 시민들의 자비심에 주로 의지하는 쪽을 택할 사람은 거지밖에 없다." (p.167). 자본주의의 이기심과 불평등 그리고 부도덕적인 면이 존재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러한 자본주의 결점을 개선하기 위한 더 나은 사회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기업 간의 경쟁을 용인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최우선시 함과 동시에 국가나 대중의 소리를 견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과 국가의 니즈를 파악하고 들어줘야만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기업은 환경을 오염시킨다. 오염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야기한다. 기업은 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필요한 기술 혁신을 할 것이라고. 역사적으로 인간이 물질과 자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한 것처럼 말이다. 노벨상을 받는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 (Ronald Coase)가 1960년 발표한 <사회적 비용의 문제 The Problem of Social cost)라는 논문에서 시장 (Market) 은 일을 잘하므로, 그 외부효과 (오염)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오염을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오염을 사고파는 개념을 접한 보수주의자들과 환경론자들의 초기 대립에도 불구하고 1990년 미국의 청정공기 법이 개정되면서 대기 오염물질 배출의 '배출권 거래제 cap-and-trade'가 시작되었다 (p. 187). 이는 기업 간 오염의 한계치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사고팔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점점 상한선을 줄이고, 기업들은 기술발전을 통해 그 한계치를 조정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내내 정부와 기업의 환경을 고려한 정책과 행동들이 누적되어 결국 인간은 환경개선이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수렴한다. 이것이 왜 현대 기술과, 사회 시스템 (자본주의)와 협력하여 환경개선을 이루는지에 대한 근거이다.


3. 대중의 인식과 반응하는 정부

저자는 기술발전과 자본주의 시스템만으로는 당면한 환경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기수는: 기술발전, 자본주의, 대중의 인식, 그리고 반응하는 정부이다. 이 네 가지 축이 함께 작동해야지 우리의 여건 속에서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심지어 중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국 국민들은 2013년부터 중국의 공기오염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오염이 특히 심한 지역에서 떠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국 정부는 석탄 발전소 배출량 감소, 새 발전소 건립 추진 보류 그리고 소규모 사업장의 석탄 난로를 없애는 조치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경제학자 슈아이첸 Shuai Chen 외 동료들은 중국 내에 오염이 10퍼센트 증가한 지역에서 인구가 약 2.7퍼센트 감소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p. 191). 마침내 이러한 시도들은 중국 전역의 미세먼지 오염을 30퍼센트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 (p.192). 이는 중국인의 평균수명은 2.4년가량 늘어나게 할 수 있는 수치다. 중국 국민과 중국 정부의 협력으로 이례적으로 환경문제를 4년 만에 해결한 것이다. (미국은 12년 걸렸다).


4. 국가 정책의 필요성

위와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기술은 환경문제를 해결하지만, 시장 자체는 환경오염에 대처하지 못한다. 고로 환경개선의 책임을 개인과 기업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는 지금 지구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기술발전과 경제시스템이 당장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 William Nordhaus 가 제안한 탄소세가 좋은 예이다. 책에 따르면, "노드하우스의 주된 제안 중 하나인 탄소세는 배출권 거래제보다 더욱 직접적이다. 그런 세금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과 에너지원을 더 비싸게 만듦으로써, 많은 구매자가 풍력, 태양력, 원자력으로 생산되는 전기를 쓰는 등의 저탄소 대안 쪽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할 것이다. 탄소세를 서서히 올리면, 구매자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자를 멀리하려는 동기가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런 생산자들이 저탄소 대안으로 옮겨갈 시간도 제공할 것이다." (p.322) 전 세계적으로 칠레, 멕시코, 남아프리카, 아일랜드가 탄소세를 도입하고 있으나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 국가들은 아직 탄소세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위에 언급했던 오염배출권의 상한선이 너무 높기 때문인데, 이미 상한선을 넘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해결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함의가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화석연료를 풍력과 태양력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는 한편, 원자력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바람이 약하거나 날씨가 흐릴 때 줄어든 원자력 발전 용량 때문에 불가피하게 석탄 발전소에 의지하여 전기를 생산한다 (석탄은 탄소배출량이 많다) (p.323).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하면서 방사선에 대해 병적일 만큼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원자력이 에너지원 중에 가장 신뢰할만하며, 싸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세계적 학술지 랜싯 Lancet에서 환경오염에 따른 사망률을 15년간 조사한 결과, 원자력이 석탄, 천연가스, 석유로 인한 사망률이 대체로 수백 배 더 높았고 심지어 사고율도 낮다고 했다. 덧붙여서 후쿠시마 방사선으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체르노빌 사고로 죽은 사람은 30년 동안 50명 이하에 불과했다 (p. 324). 이처럼 방사선의 위험은 사람들이 인식과 크게 다르다.


저자는 “매우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은 경제나 사회의 진행 경로를 급진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도 할 수 있다." 고 결론짓는다. 자본주의, 기술 발전, 대중의 의식, 반응하는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많이 (더 잘?) 하도록 놔두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큰 변화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잘 지켜온 것들을 무너뜨린다. 잘 설계된 공장을 부수고, 별 탈없이 작동하는 사회적 제도를 단 한 번의 문제로 바꾸려고 한다. 99가지가 문제가 없어도 한 가지 큰 문제 때문에 모든 것을 바꾼다. 이러한 움짐임은 비단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사회가 결정하는 많은 일들에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당신이 경제적 보수주의자이거나 진보적 환경주의자던 간에 열려있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상당히 크나큰 통찰력을 당신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오직 보수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사람은 저자가 주장하는 대중과 정부의 개입, 탄소세 적용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 도 있고, 우리 사회에서 환경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여기는 환경론자에게는 통계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기존에 알려져 있는 사실과는 다르다고 논박하는 챕터가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경제학 측면에서 환경문제를 고집스레 바라본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가들의 논문과 세계적 통계학자의 근거들을 기반으로 환경문제에 대한 기존의 엉터리 믿음들을 타파한다. 환경 문제를 환경론자에게 물으면 당연히 환경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것이며, 채식주의자 한테물어보면 육식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환경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현대의 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맞물린 채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환경 문제도 점진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착취한 자연을 그 인간이 다시 회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