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영 Jan 15. 2024

에티오피아 아메리카노



재즈 선율이 나른한 금요일 오후를 깨운다.     


외근을 마치고 광화문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 퇴근 시간이 다 되지 않은 탓에 가게는 한산했다. 적당한 커피향과 포근한 분위기가 감각을 깨워갔다.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좋았던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다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윽고 들뜬 기분에 어울리는 에티오피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산뜻하게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은 앞으로의 거취와 관련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진로, 살 집,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좋게 말하자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벅찬 고비들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윽고 음료가 준비됐음을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 막막한 앞날을 빼어 닮은 시커먼 커피가 준비되어있었다.     


문득 처음 커피를 마셨던 때가 떠올랐다. 걱정이랄 건 밀린 학습지뿐이던 철없는 중학생 무렵이었다. 들이켰던 커피는 쓰고 맛있지는 않았으나 단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커피 맛을 좀 알겠으나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가 조금 컸고 몇 푼의 경험들을 지층처럼 쌓았을 뿐이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자, 한산하던 카페 안이 사람들로 하나둘 들어찼다. 스피커 너머 노래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적막이 깨지며, 이제는 나더러 정신을 차릴 때라고 외치는 듯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재즈가 흥겨웠다. 알 수 없는 낙관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갑작스레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서둘러 노트북을 덮었다. 확신일지, 그저 바람일 뿐인지는 모르는 채. 

매거진의 이전글 닭도리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