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선율이 나른한 금요일 오후를 깨운다.
외근을 마치고 광화문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 퇴근 시간이 다 되지 않은 탓에 가게는 한산했다. 적당한 커피향과 포근한 분위기가 감각을 깨워갔다. 금요일이라는 이유로 좋았던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다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윽고 들뜬 기분에 어울리는 에티오피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산뜻하게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은 앞으로의 거취와 관련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진로, 살 집,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좋게 말하자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벅찬 고비들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많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윽고 음료가 준비됐음을 알리는 진동벨이 울렸다. 막막한 앞날을 빼어 닮은 시커먼 커피가 준비되어있었다.
문득 처음 커피를 마셨던 때가 떠올랐다. 걱정이랄 건 밀린 학습지뿐이던 철없는 중학생 무렵이었다. 들이켰던 커피는 쓰고 맛있지는 않았으나 단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커피 맛을 좀 알겠으나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가 조금 컸고 몇 푼의 경험들을 지층처럼 쌓았을 뿐이다.
저녁 시간에 가까워지자, 한산하던 카페 안이 사람들로 하나둘 들어찼다. 스피커 너머 노래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적막이 깨지며, 이제는 나더러 정신을 차릴 때라고 외치는 듯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가게 안을 가득 채운 재즈가 흥겨웠다. 알 수 없는 낙관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갑작스레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서둘러 노트북을 덮었다. 확신일지, 그저 바람일 뿐인지는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