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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Mar 09. 2024

이사일기



이 도시 위에도 나의 뿌리가 깊게 내려갔으면.  

   

서울 살이도 어느덧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멋모르던 대학생 시절 단칸방에서 시작한 나의 서울 정착기는 몇 집을 돌고 돌아 생경한 동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난 5년, 학교 근처에 터전을 잡고 아등바등 잘도 버텨왔다. 생활도 추억도 켜켜이 쌓여가던 그곳을 끝내 ‘우리 동네’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낯설고 두렵던 서울에 드디어 마음 둘 곳이 생긴 듯했다.     


그러나 나는 정든 그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삶의 양분이 조금씩 잠식되는 것 같았다.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꿈이 들어섰다 지쳐가는 곳,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을 염두에 두는 곳. 그래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이 동네도 졸업하고 싶었다.     

새 집을 구하는 일은 힘들었다. 더군다나 이사철이라 어려움은 배가 됐다. 퇴근 후 매일같이 부동산을 오갔고, 좋은 방을 봤다가 놓치고, 눈이 빠지게 부동산 중개 어플을 들여다보고, 막상 집을 봐도 그닥 맘에 들지 않거나, 다시 기다리기를 거듭했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 불쑥 나타나 염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지 않기도 했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다행히 끝내 괜찮은 집을 하나 구했고, 강을 건너와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게 됐다.  

  

이 동네로 말하자면, 꿈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이 펼쳐지는 곳 같았다. 한적하고, 삶에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을 때, 안정적인 정착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을 택한 것은 꽤나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살이의 새로운 챕터에 들어선 지금,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고 싶지 않다. 이 도시 위에도 천천히 나의 뿌리를 내려가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삶을 이곳에서 완성할 수 있을까? 약관에서 이립으로 흘러가는 지금, 확고히 자리 잡아 끝내 일어설 수 있기를. 새로운 터전에서의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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