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 비참한 몸뚱아리로 지금껏 잘도 버텨왔다. 서른, 내가 30년이나 살았단다. 여전히 오래전 그날들에 머물러있던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운이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직장은 잡을 수 있을까, 막연히 걱정만 하던 때가 있었으나 오늘도 야근을 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문을 나섰다. 모범적인 팀원이 되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였고, 그 결과로 신임과 업무를 덤으로 얻어갔다. 시키는 것을 잘해내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렇게 나는 또 한 해를 넘겼다.
새해의 첫 출근날, 모두들 피곤한 얼굴을 한 채 삼삼오오 회의실로 모인다. 그리고 한 해를 위한 목표와 전략 따위를 논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떠올려야만 할 것 같았다. 온통 조바심이 났지만 끝내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모두 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모두 조직의 계획이었고 고객의 만족과 성과였다. 그 거창한 계획 속에 나는 없었다. 엑셀 속의 WBS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따위에서 나는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
모두 잘 해내면 좋은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 그것들을 잘 해내고 있는가. 힘들고 지칠 때면 어김없이 들락거리는 채용 공고 사이트를 한참 들여다보다 모두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니터 속의 창을 곧 닫아버린다.
장표를 만드는 솜씨는 날로 좋아졌고, AI와는 날이 갈수록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해 갔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일을 했고 또다시 해내고 나서야 전철에 몸을 싣는다.
나는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남의 녹을 받아먹고사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나로서 사는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원인 모를 복통은 계속되고 있었고 책상 위의 약통은 하나 둘 늘어만 갔다.
아픈 거였다.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지? 이 서른 먹은 몸은 어딘가 고장 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부터 고장 난 것인지, 몸이 고장 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모두 고칠 수만 있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