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최고의 미덕(美德)이다'라는 말은 영어 'Modesty is the best virtue.'의 번역이 아닐까 짐작되지만 정확하게 누가 말했는지 추적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똑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동서양을 가로질러 유사한 문구의 다양한 출처도 있었고,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왔다.
겸손을 덕목으로 여기는 가치는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같은 동서양의 사상가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종교적 인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언급되어 왔고, 후대에도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토론과 탐구의 주제였다.
기록 자체가 높은 비용을 들여야 했던 고대 시대에도 선별되어 기록될 만큼 영향력 있던 인물들이 한 마디씩 거든 것을 보면, 몇 천 년 전에도 인간들은 겸손하지 않았고, 겸손하지 않은 인간들 때문에 문제가 많았음이 틀림없다. '겸손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자발적 의지와 상관없이 DNA로 유전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나고 있는, 지우지 못하는 과거이거나 제거할 수 없는 현생 인류가 가진 오류 중의 하나처럼 여겨진다.
겸손에 대한 교과서와 사전적 정의는, 겸손은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과시하지 않는 겸허한 태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타인과 관련하여 조금 더 나아가면, 겸손은 남을 높이고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 성과, 지위를 과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며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한다. 겸손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학습하고 성장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포함한다. 겸손은 긍정적인 인간적 가치로 간주되며, 조화로운 사회관계, 개인 성장, 리더십의 요소로서 인정받고 있다.
대단히 훌륭한 인간상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다.
잠시 가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타인의 삶을 압박하고 자신의 이익에 진심인 정치인과 관료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라는 돈이 권력인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사람을 두들겨 패고 매값으로 수표 몇 장만 던져 주면 된다는 인식을 가진 부자들, 그리고, 지나친 자기 과시와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성격 장애로 분류될 수준의 수많은 나르시시즘 성향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찰진 욕을 일부러 찾아서라도 시원스럽게 날려 주고 싶은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상황에 맞든 맞지 않든 간에, "겸손할 줄 알아야지 말이야."라는 말도 뭐나 된 듯이 덧붙이며.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On ne naît pas femme, on le devient.)"라고 말했다. 보부아르의 논의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성, 즉 보편적으로 알려진 소극적, 의존적인 여성성은 여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모순에 의해 구성된 사회적, 문화적 산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보부아르의 관점을 차용하여, '인간은 겸손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즉, 겸손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성이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다.
그러고 보면, 욕을 먹으면서도, 권력, 지위, 돈을 잘 활용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인간들이 본성대로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학습되고 강요된 겸손에 족쇄가 채워진 채 착하게 겸손한 우리가 어쭙잖은 겸손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2학년 때, 매년 학과에서 올렸던 연극에 출연할 지원자를 뽑기 위해서 연출과 기획을 맡은 선배들이 우리 강의실로 찾아왔다. 80년대 초는 노래방도 없었고, 아이돌도 없었고, 지금처럼 배우나 연예인이 존중 받고 있지 못했다. 심지어, 연예인을 DDR로 비유하기도 했다. DDR은 화살표에 맞춰서 바닥의 패널을 밟는 당시에 유행하던 오락기인데, 연예인을 비하할 때 DDR은 '딴따라'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배우가 되거나 연극을 하는데도 여러가지 면에서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 시절이었다.
주연은 모두 선배들에게 돌아갔고 2학년에게 돌아오는 배역이 모두 조연인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사실, 황금 같은 여름 방학을 희생하고 방학 내내 무더운 강의실에서 대본 외우고 연극 연습을 한다고 생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손익을 따지면 이익이 남지 않는 선택이었다. 안달이 난 선배들이 설명하고 재촉하였지만 대답 없는 강의실은 어색하고 조용했다.
나는 연극을 해 보고 싶었다. 선배들이 연극 배역을 찾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흥분이 되고 알 수 없는 기대로 설렜다. 하지만, 막상 선배들이 왔을 때 "한번 해 보고 싶다"라고 손을 들지 못했다. 내가 이전에 연기를 해 본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배역에 지원을 할 수가 있겠나? 다른 애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나? 스스로 하겠다고 손을 든다고? 겸손하지 못하게.
한 때 좌우명으로 삼았던 고사성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낭', '가운데 중', '갈 지', '송곳 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송곳의 끝은 밖으로 삐져나온다. 즉, 재능이 뛰어나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 밖으로 빠져나와서 사람들이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렸다. 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고 칭찬하고 선택해 주기를 바라면서 살았다. 겸손하게.
나는 너무 연극이 하고 싶었다. 혼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듣고 손을 꼼지락거렸지만 들지 못했다. 다급해진 선배들의 재촉과 설득 끝에 남자 배역 3명과 여자 배역 2명이 결정되었다. 경쟁이나 오디션도 없었고 겨우 배역을 채워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손만 들면 배역을 맡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나는 손을 들지 못했다. 그렇게 선배들은 돌아갔다. 나는 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는 끝까지 나의 부족함을 알고 나의 겸손함을 지켰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연극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딱히 학교에 갈 일이 없었지만, 연극 연습이 진행되는 강의실을 찾아갔다. 강의실 뒤쪽 구석에 앉아서 대본 리딩과 연습 광경을 매일 한두 시간씩 지켜 보았다. 배역으로 참여는 못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연습하는지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배역을 선발할 때 손을 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다.
연기를 해 본 적이 없는 어린 대학생들의 연습은 쉽지 않았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3막으로 이루어진 연극에 1막에 등장하지 않는 조연도 있었다. 동급생 남자아이의 배역도 2막부터 등장을 하여, 1막을 연습하는 내내 하는 역할도 없이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기다려야 했다. 자기 배역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 친구는 어느 날부터 오후 연습 시간에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는 날이 생겼다. 배역이 매일 모두 모여서 자신의 역할이 없어도 다른 학생들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지만, 아직 1막을 연습 중인 과정이라 2막부터 등장할 배역에게 억지로 참석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라 선배들은 못마땅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지부진하던 연습 진도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드디어 2막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배역이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연습실을 방문하여 한두 시간을 지켜보고 돌아가곤 했다. 2막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배역을 맡은 친구는 며칠째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아직 상상 속에 있었고, 지금은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삐삐'마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는 자취방에도 없었고, 고향집 전화번호도 아무도 몰랐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어쩌지." 다들 난감해했다.
어느 날, 연습실에 갔을 때, 연출 선배가 나를 불렀다. "야, 00가 없으니 일단 네가 대신 한 번 해 볼래?" 나는 "내가 대신해도 되겠느냐?"라고 겸연쩍어 하면서 대역을 하였다. 매일 연습 광경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연습을 해 오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고, 연습장에 뒹구는 대본을 빌려 모두 읽어 보았기 때문에 내용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야, 잘하네. 그럼, 네가 해."
대본을 받고는 너무나 기뻤다. 대본을 받은 그날 밤새워 내가 맡은 역할의 대사를 모두 외워버렸다. 그 뒤로 연극에 미쳐서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배웠다. 그 해 공연이 끝나고, 연출 선배가 말했다. "내년 연출은 네가 맡아라."
한 달여를 할 일도 없이 매일 연습장에 찾아가 앉아 있었고, 굴러다니는 남의 대본을 틈틈이 훔쳐보며 연극의 전부를 읽고 이해하는 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정말로 하고 싶어 했던 연극에 끼어들 수 있게 되었다. 결국은 주머니에 넣어 둔 나의 송곳을 선배들이 발견하고 나를 뽑아 준 것이다. 결국은 낭중지추 한 것이다. 스스로를 드러냄 없이 겸손한 방식으로 원하던 역할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겸손한 태도'라 여겼던 것이 '용기를 내지 못함'에 대한 핑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용기를 내어서 손을 들었으면 쉽게 될 일을, 그렇게 빙빙 돌아서 힘들게 도달했나 싶다. 나는 힘들게 배역을 얻었고, 졸지에 배역을 빼앗긴 친구는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은 겸손을 위장한 나의 용기 없음이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주변을 힘들게 하였음이 틀림없다.
혹시, 우리가 '겸손'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용기 없음'이나, 힘들고 어려움에 대한 '상황 회피'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다.
"겸손은 개나 줘버려"라는 의미가, 송곳이 없는데도 마치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과시하거나, 허풍을 떨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구라를 치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쓸만한 송곳을 갖고 있음에도 애써 주머니에 넣어서 송곳의 끝이 밖으로 삐져나와서 "너도 송곳이 있었어?"라며 남이 알아 봐 줄 때까지 기다리는 기회와 시간의 낭비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겸손은 자기 계발과 타인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긍정적인 가치로 여기고 살만하지만, 겸손을 오용하거나 위선적으로 사용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겸손은 미덕이다'라는 말의 권위에 도전하고 싶다. 겸손이라는 관념으로 나를 가두는 집단이나 계층에 반기를 들고 싶다. '겸손은 미더덕이다'라며 매끈하게 단장된 원문의 권위에 시시껄렁한 말장난으로 하찮은 흠집을 내고 싶다. 더 이상 나에게 강요하지 못하도록. 나의 아들 딸들이 더 이상 얽매여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