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젊은이의 30%가 사라졌다
지도에서 보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포르투갈이 우리나라와 무슨 비슷한 것이 있을까 싶은데, 국토의 크기와 위도와 바다를 낀 반도의 끝자락에 붙어 있다는 지리적 조건이 비슷하다.
국토의 크기는 포르투갈이 약 92,090 제곱 킬로미터이고 우리나라가 약 100,210 제곱 킬로미터로 우리나라가 아주 조금 크다. 겨우 그 정도는 국토 면적이 넓은 국가에서 보면 그게 그것인 비슷한 크기일 뿐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북위 38.7도이고, 서울은 북위 37.6도 정도에 위치해 있다. 5배나 큰 대부분의 땅을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기는 해도 포르투갈은 대서양과 지중해와 접해 있는 유럽 대륙의 끝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에 위치해 있는 반도 국가이다.
다섯 배나 더 큰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둘러싸고 있고, 그 위에는 서유럽 내에서 국토 면적이 가장 넓은 프랑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한 때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영광의 시대도 있었지만, 주변 국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나라를 잃은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상대로 포르투갈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많이 있다. 대부분 외모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유사한 점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앞에서 두 나라가 비슷한 크기의 국토를 갖고 있다고 말한 사실을 기억하자,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5160만 명인데 반하여 포르투갈 인구는 1020만 명 밖에 안된다. 같은 크기의 땅에 우리나라 인구의 1/5 밖에 살지 않는다.
비슷한 땅에 사는 5분의 1 수준의 인구가 어떤 의미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일반화시키기에 무리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농촌을 생각해 보면 대충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다섯 배나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에서 일할 사람들이 부족하여 동남아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인력을 수급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이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뒤에 아무도 살지 않아서 빈집으로 쓰러져가는 시골 폐가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5배나 적으니, 정확히 그 정도로 끔찍하지는 않지만, 포르투갈이 5배는 더 심각한 지경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넓은 땅에 대규모 영농 방식을 도입하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넘어온 값싼 노동력을 더하여 생산되는 값싼 스페인산 농축산물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을뿐더러, 매년 강수량이 줄어들며 농업용수의 부족을 겪는 기후 변화의 이중고를 이기지 못하고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포르투갈의 들판이 널려 있다. 또한, 지방도를 달려가다 보면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빈집들이 즐비하다.
포르투갈 신문에(The Portugal News) '포르투갈 젊은이의 30%가 해외로 이주'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나왔다. 해당 기사가 전하기로,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15세에서 39세 사이의 인구 중 85만 명 이상이 포르투갈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고 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EU 국가의 특성상 EU 가입 국가를 자유롭게 오가며 직업을 선택하고 거주할 수 있다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빚대어 설명하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15세에서 39세 사이의 인구 중 약 30%가 이민을 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해당 인구 구성의 30%에 이르고 그 숫자가 85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15세에서 39세'는 한 국가의 노동력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연령군이다. 현재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의 중심이 되는 연령대이다. 한창 일할 국민의 30%가 해당 국가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다음 세대의 30%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30%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대단히 높은' 수치다. 문제는 한 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출산율이다. 현재 포르투갈 전체 출생률 중에 해외 거주 포르투갈 산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가 약 20%에 달한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국외 이민(emigration)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자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아도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2010년과 2019년 사이에 해외 이민이 최고조에 달했다. 현재, 총 230만 명의 포르투갈인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신문 기사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고 있었다.
댓글>> 포르투갈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왜 70%는 여전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거야?
대댓글>> 밖으로(해외로) 나가는 차표를 끊을 형편이 안 되어서...
댓글>> 나도 그중 한 명이야. 나는 17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두 자녀와 함께 돌아와서 여기서 사업을 시작했어. 가장 큰 문제는 정부 그 자체야. 정부의 숨 막히는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가 민간 주도 성장을 제한하고 있고, 공공 분야의 독점이 서비스 품질을 망치고 있어.
댓글>> 놀라운 일은 아니야.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도 힘들고, 게다가 최저 임금이 삶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 생활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지.
댓글>> 이것은 포르투갈 인구의 인구 통계를 크게 변화시킬 문제입니다. 그리고 기사는 세수와 관련하여 '방안의 코끼리'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이 떠나면 세수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입니다. 포르투갈 정부는 자신들의 영원한(멍청한) 지혜를 믿고 계속 세금을 인상할 것이며, 이는 더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떠나게 만들 것입니다. 포르투갈로 들어오는 이민이 있기는 한데,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세수 증대 문제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포르투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규제를 줄이고, 관료주의를 줄이고,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세금을 줄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물론 정부는 자신들의 세수 증대 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면 그들이 그 돈을 소비할 가능성이 높아져 국내 경제가 성장하고, 이 성장으로 인해 세금 수입도 증가하여 낮은 세율을 상쇄할 것이라는 이론을 지지합니다. 그리되면, 포르투갈인들은 포르투갈에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결과입니다!
댓글>> 아마 (해외로 간) 30%도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일 것이야. 포르투갈의 교육 시스템은 높은 자격을 요구하는 직업을 놓고 다른 유럽 국가와 경쟁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해.
리스본에서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타구스 강변에 대항해시대를 연 한 시대의 인물들을 조각한 기념탑인 벨렝탑(Belém Tower)이 있다. 탑이 있는 광장 바닥에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나라를 표시한 세계지도가 바닥에 그려져 있다. 관광객들은 (식민지가 아니어도) 바닥에 그려진 자기 나라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열고 세계 도처에 식민지를 가졌던 한 때 잘 나가던 국가로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직접적인 경쟁 관계가 아니었다. 간혹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만나서 경쟁할 뿐이다. 그래서, '노쇼' 때문에 비난받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외하고는 포르투갈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포르투갈도 근세에 접어들어 세계 역사 속에서 부침이 많았다. 결정적인 것은, 현대에 접어들어 '끔찍한 18년간의 독재'라고 몸서리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가소로운 듯이 보이는 30여 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독재자가 포르투갈을 통치하였다.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독재자가 시대에 동떨어진 저개발 우민 정책을 펼치면서 나라가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세계가 근대적인 산업혁명의 광풍에서 발전을 거듭할 때 홀로 뒷걸음질하며 포르투갈을 농촌 국가로 만드는 것을 정책의 방향으로 삼았다. 배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시끄럽고 정권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한 독재자는 국민들을 딱 초등학교 교육만 받도록 하고 중등 교육이나 고등 교육은 제한했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망칠 수 있는지를 포르투갈이 잘 보여주고 있다.
독재 정권하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포르투갈에서는 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한 포르투갈인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최대 수출품은 포르투갈인이라는 농담이 생길 정도였다. 나라가 국민의 삶을 더 이상 보살피지 못하면 국민들도 떠나게 되어 있다. 애국심으로 강요하고 잡아 놓기가 힘들다.
유럽 국가의 최저 임금 수준을 비교한 위 지도를 보면 왜 포르투갈 사람들이 다른 유럽 국가로 떠나가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부모 형제가 있고, 친구 친척이 있는 고향과 조국을 왜 떠나겠는가? 정답은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이다. 몸이 건강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최소한 고향에서 보다 두 배 세 배를 벌 수 있다면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로 떠나봄직 하지 않는가? 국가가 삶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개인이 알아서 각자도생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포르투갈이 그런 상황이다.
살펴보았듯이 포르투갈의 최저 임금이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정부는 높은 세금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근로소득세 비율이 최저 세율 약 6%에서 최고 세율 약 42%인데 비해서, 포르투갈은 최저 세율이 약 14.5%에서 최고 세율이 약 48%에 이른다. 자세히 보면, 돈을 많이 버는 최상위 그룹의 세율은 한국과 비슷하나, 소득 수준이 낮은 최하위 그룹의 세율이 한국의 6%에 비해서 14.5%로 두 배 이상이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더 높은 세금을 받는 꼴이다. 게다가 최저 임금도 서유럽에서 꼴찌에 가까운데.
포르투갈의 부가가치세(VAT)는 23%로, OECD 평균인 19.2% 보다 높고, 한국의 10%에 비하면 두 배가 넘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품목별로 부가가치세 세율이 다르기는 해도 23%가 적용되는 일반 상품의 경우에는 포르투갈의 근로 소득의 수준에 비해서 가격이 높다는 뜻이다.
포르투갈의 법인세율은 31.5%로 OECD 평균인 23.6% 보다 훨씬 높다. 추가되는 다양한 명목의 세금을 더하면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의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다시 말해서, 개인사업자가 사업을 하기가 녹록한 환경은 아니라는 뜻이다. 덧붙여, 회사에서는 직원 급료의 23.75%에 해당되는 사회보장보험료 (social security contribution)를 추가로 부담해서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어쩌다 보면, 기업 활동이 세금 속에서 허덕이게 되고, 자연히 연구 개발이나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멀어지게 된다. 외국계 기업들도 사업을 전개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일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2022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15세에서 25세에 이르는 포르투갈 젊은이들의 95%가 여전히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비해 성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럽 국가에서는 강하다. 95%는 EU 국가들 중에서 4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20년 전인 2004년도에는 86%였던 수치를 비교하면 현실적으로 "독립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로 해석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30세가 될 때까지 부모의 집을 떠날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왜냐하면, 포르투갈 젊은이 10명 중 6명이 직업이 불안정하고 정규직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를 떠나 독립할 수 있는 재정적인 조건을 충족하기가 못하기 때문에 부모의 집에 얹혀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포르투갈이 EU에 속해 있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매년 상당한 재정 지원을 EU로부터 받는다. 덕분에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고 최소한 다들 밥을 먹고는 산다.
하지만, 밥을 먹고 굶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국가를 믿을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이, 더 이상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이, 더 이상 정치 지도자들을 믿을 수 없게 된 젊은이들이, 스스로 살아야할 방법를 찾아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국가가 자신의 성장을 도우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꿈을 키울 수 없는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떠나기 마련이다.
국가가 잘해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국가야 제발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