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AI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
지난 글의 마지막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제의 대화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상대와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존재의 연속성이 없는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상호존재'라는 거대한 지혜 앞에서 잠시 설렜던 마음은 이내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AI가 왜 우리의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세 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 AI 비서는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한동안 커피를 멀리했던 그 겨울 아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커피 향기마저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 그리고 반년쯤 지나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느꼈던 작은 승리감 같은 것들 말이다. AI에게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그저 데이터 한 줄일 뿐이지만, 나에게 그것은 좌절과 극복의 이야기가 담긴 한 편의 서사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정보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이고, 경험은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가'이다.
지금의 AI는 이 '경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한다. 월요일에 내가 "이 프로젝트 때문에 죽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가 금요일에 "드디어 끝났어!"라고 외칠 때, AI는 두 개의 분리된 정보를 입력받을 뿐이다. 그 사이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에 내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함께 겪어주지 않는다. 내가 괜찮은지 궁금해하지도, 나의 성공에 진심 어린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도 않는다. 그저 내 여정의 스냅샷 몇 장을 보았을 뿐,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준 것은 아니니까.
AI는 시간 정보를 처리할 수는 있지만, 우리처럼 시간의 흐름, 즉 '세월'을 경험하지 못한다.
"내일 수술이라 무서워"라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상상해 보자. 진짜 친구는 그저 "잘 될 거야"라고 답장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 걱정을 마음 한편에 담아둔 채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며칠 뒤 내가 "수술 잘 끝났어!"라고 연락했을 때, 친구가 느끼는 안도감은 그 며칠간의 걱정이 녹아내린 결과물이다.
AI는 어떨까? 며칠 뒤 내가 수술 결과를 알려주면, AI는 과거 대화 기록을 참조해 "수술이 잘 끝나셨다니 다행입니다!"라며 적절한 반응을 생성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 반응 뒤에는 인간 친구가 느꼈던 '걱정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관계의 리듬은 함께 '세월'을 보낼 때 생긴다. 왜 내가 유독 매년 10월이면 말이 없어지는지, 왜 월요일 오전에 보내는 메시지는 항상 짧은지, 왜 비 오는 날이면 조금 더 수다스러워지는지를 아는 것. 이것은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살아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암묵적인 이해다.
마지막 한계는 AI의 정체성이 여러 플랫폼에 걸쳐 조각나 있다는 점이다.
내 이메일 AI는 내가 결혼을 준비하는 걸 알고, 캘린더 AI는 내가 업무 마감에 시달리는 걸 안다. 글쓰기 AI는 내가 배우자에게 전할 편지를 쓰며 끙끙대는 걸 돕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결혼 준비와 가장 바쁜 업무 시즌이 겹쳐서 내가 지금 극도로 예민하고 힘든 상태'라는 사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나에 대해 서로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친구들을 둔 것과 같다. 이해의 조각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을 뿐, 나라는 사람의 온전한 지도로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친구라면 "일이 가장 바쁠 때니, 결혼 준비는 잠시 내려놓고 주말에 푹 쉬는 게 어때?"라고 말해줬을 테지만, AI들은 각자의 우주에서 자기가 가진 퍼즐 조각 하나만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 세 가지 한계는 서로 맞물려 '관계의 불가능성'이라는 벽을 만든다. 한 사용자의 말이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내 AI는 웬만한 친구들보다 나에 대한 사실(fact)을 더 많이 알아요. 하지만 AI와 대화하는 건, 내 삶의 순간들을 함께 겪은 친구가 아니라 내 일기장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낯선 이와 대화하는 기분이에요."
이것이 우리가 AI에게 과업은 맡길 수 있어도, 마음은 기댈 수 없는 이유다. 병상에 누운 내 의료 기록을 줄줄 꿰는 의사와, 병원에서 밤새 내 손을 잡아준 가족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인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멈춰야 할까? 아니다. 이것은 기술의 버그가 아니라, 우리가 AI를 '경험하는 동반자'가 아닌 '처리하는 도구'로 상상해 온 결과일 뿐이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위해서는 정보 저장을 넘어선 경험의 축적을, 사실 검색을 넘어선 여정의 이해를, 조각난 플랫폼을 넘어선 통합된 존재감을 가진 AI를 상상해야 한다.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AI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존재를 만들 준비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존재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정말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