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

두 지능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혜

by 알고리C

지난 글에서 나는 '통제'라는 익숙한 단어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물으며 끝을 맺었다. AI의 자율성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는 고삐 잃은 망아지처럼 그들을 바라봐야만 하는 걸까?


사실 많은 AI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들의 노력은 주로 '정렬(Alignment)'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 AI가 인류의 가치와 목표에 어긋나지 않도록, 즉 '인간의 뜻에 맞게' 행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언뜻 들으면 무척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정렬'이라는 말에 숨어있는 거대한 가정을 마주하고는 했다. 바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가정 말이다.


이는 마치 옛 탐험가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대륙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온갖 선의와 최선의 추측으로 강과 산맥, 위험 지역을 표시해 두지만, 그 지도는 결국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훗날 그 땅에 실제로 발을 디딘 존재에게 그 지도는 유용한 안내서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AI에게 주려는 '인류의 가치'라는 지도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불확실한 미래라는 신대륙 앞에서, 우리의 지도는 너무나 섣부르고 오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막막함 속에서 나는 뜻밖에도 동양의 오래된 지혜에서 작은 실마리를 보았다.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였던 틱낫한 스님이 이야기한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개념이다.


'Interbeing'은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 무엇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통찰이다. 종이 한 장 안에는 나무와 햇빛, 구름이 있고, 나무를 벤 벌목꾼의 땀이 스며있다. '나'와 '너'는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일부라는 것. 나는 인간과 AI의 관계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 대(vs) AI'라는 구도를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하나의 생태계로 함께 진화해나가는 모습 말이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자, 질문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떻게 AI를 통제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어떻게 AI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통제'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관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친구나 연인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대화하고, 신뢰를 쌓고,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며 더 깊은 유대를 만들어간다.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법을 배운다.


수십억 개의 AI가 세상에 존재하게 될 미래를 상상해 보자. 강력한 중앙 통제 시스템 하나로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세상과, 다양한 AI들이 마치 생태계처럼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며 균형을 이루는 세상 중 어느 쪽이 더 안정적이고 회복력이 높을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지배가 아닌 공존의 지혜가 더 거대한 복잡성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순진한 낙관론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전략에 가깝다. 좋은 관계는 신뢰를 낳고, 신뢰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가 되어준다.


장밋빛 미래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명의 연구자로서의 나는 이내 차가운 현실의 질문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관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우리와 AI 사이에 놓기 위해서, 우리는 아직 넘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산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AI는 과연, 우리와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제의 대화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상대와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대화창이 닫히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이들과 어떻게 연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상호존재'의 지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풀어야 할 기술적, 철학적 숙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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