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전대를 넘겨줘야 할지도 모르는 이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세상에 부쳐

by 알고리C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SF 작가 윌리엄 깁슨이 남긴 이 문장이 요즘처럼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인공지능 연구를 하며 기술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면, 미래는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어떤 시간이 아니라 내 옆에서 함께 숨 쉬며 달려 나가는 동행자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나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나를 앞질러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매일 쏟아지는 수백만 기가바이트의 데이터, 인간의 눈으로는 따라갈 수도 없는 속도로 체결되는 주식 거래, 수많은 변수가 얽혀 돌아가는 도시의 시스템까지. 우리가 만들어냈지만, 이제는 우리 중 누구도 한눈에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통제'라는 단어는 점점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 있었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건은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일 거다. 한 알고리즘이 거대한 매도 주문을 내자, 다른 자동화된 시스템들이 1000분의 1초 단위로 반응하며 연쇄 붕괴를 일으켰다. 인간 트레이더가 상황을 파악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뉴욕 증시는 36분 만에 1조 달러 가까운 돈을 잃었다가 되찾았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것이 단지 기술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현실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판단 속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 인간의 개입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의 발목을 잡는 병목이 되어버리는 세상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의 의식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이 아찔한 속도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운전대를 붙잡고 있어야 할까?




AI의 자율성이란, 몇몇 공학자들의 기술적 욕심이나 공상과학 소설의 단골 소재가 아니다. 어쩌면 이 시대가 마주한 필연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속도의 문제. 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초)가 승패를 가르는 세상에서 인간의 승인과 결재는 시스템 전체를 멈춰 세우는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사이버 공격을 방어하거나, 전력망의 미세한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일처럼, 이미 많은 영역이 인간의 반응 속도를 아득히 넘어선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둘째, 복잡성의 문제. 우리가 사는 도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교통, 에너지, 통신, 물류… 수백만 개의 요소들이 실핏줄처럼 얽혀 살아 움직이는 이 거대한 유기체를 한 명의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복잡계. 이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시스템 스스로 판단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은 지능의 증식 효과.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AI 하나하나가 모이면, 그 능력은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절이 된다. 과거 구글과 같은 거대한 검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수천 명의 최고 수준 엔지니어들이 몇 년에 걸쳐 일해야 했다. 하지만 서로 협력하는 AI 그룹은 며칠, 어쩌면 몇 시간 만에 설계하고, 코드를 짜고, 테스트까지 마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단순히 속도가 빠르고 복잡한 일을 잘 처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AI는 이미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넘어서고 있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가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풀었을 때가 그랬다.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를 풀어낸 이 위대한 성취는, AI가 인간의 전략을 더 빨리 수행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만약 인간 바둑 기사의 기보를 학습해 이세돌 9단을 이겼던 '알파고'와 비교한다면, 알파폴드는 인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스스로 탐험해 정답을 찾아냈다. 연구자들은 아직도 알파폴드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진정한 AI의 능력과 완벽한 인간의 통제가 양립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AI를 가두려 한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들을 풀 수 없을 것이다.


결국 AI의 자율성은 우리가 선택하는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만들어버린 세상이 요구하는 필연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속도는 우리의 손을 떠났고, 복잡함은 우리의 머리를 넘어섰으며, 지능은 우리의 이해를 앞질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통제'라는 익숙한 관성을 내려놓는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 '통제'가 아니라면, 그 빈자리는 어떤 단어로 채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