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공존하는 구체적인 경로들
지난 글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변화의 강을 건널 ‘다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효율성의 구호 아래 누군가를 강 저편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희망을 가진 우리 모두가 함께 건너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나는 그 막연했던 질문의 답을, 이미 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다리를 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틱낫한 스님은 종이 한 장에서 비를 머금은 구름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존재’의 지혜. 어쩌면 우리가 놓아야 할 다리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그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전환이었다. AI를 '나를 대체할 도구'가 아닌 '나와 함께할 동료'로 바라보는 것.
음악가 홀리 허든(Holly Herndon)은 자신의 음악 작업에 사용하는 AI에게 '스폰(Spaw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의 'AI 아기'라고 불렀다. 이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폰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치 아이를 키우듯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인간 홀로 혹은 AI 홀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 탄생했다. 그녀의 앨범 ‘Proto’에서 스폰은 ‘사용된 기술’이 아닌, 앙상블의 ‘일원’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딥마인드의 알파폴드가 50년 묵은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알파폴드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지루하고 반복적인 계산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몇 달, 몇 년씩 걸리던 일을 알파폴드는 주말 동안 해치웁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대신, 더 위대한 가설을 세우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시간을 쏟는다. AI는 대체자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탁월한 동료 연구원이 된 것이다.
마음가짐이 다리의 방향을 정했다면, 그 위를 튼튼하게 걸어가기 위해선 '신뢰'라는 설계가 필요하다. 신뢰는 투명성에서 온다.
인도 뭄바이의 한 병원에서 사용하는 AI X-ray 판독 시스템은 이 신뢰의 설계를 잘 보여준다. 이 AI는 의사에게 ‘이 환자는 결핵입니다’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대신 엑스레이 사진의 특정 부분을 조명하며 ‘의사 선생님, 여기를 한번 보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다. 자신의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보여주며, 최종 결정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AI가 빠른 속도로 1차 검진을 하고, 의사는 더 깊이 있는 판단에 집중한다. 이 협력 모델 덕분에, 해당 병원의 결핵 발견율은 35%나 증가했다.
이처럼 단단한 다릿돌이 놓이자, 그 위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예술의 영역에서, 터키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은 베를린의 실시간 환경 데이터를 AI로 시각화하여 살아 움직이는 예술 작품을 만든다. 인간의 감성과 AI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만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교육의 영역에서, 싱가포르의 모든 학생들은 AI 학습 시스템을 파트너로 둔다. AI는 개개인의 학습 속도에 맞춰 수학 문제를 내주는 맞춤형 조교가 되고, 인간 교사는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가르치는 데 집중한다.
심지어 가장 내밀한 마음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AI 심리치료 챗봇 '워봇(Woebot)'은 인간 치료사만큼이나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상담을 망설이던 이들에게, AI는 인간을 소외시키는 대신 오히려 인간에게 다가갈 첫걸음이 되어주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AI 때문에 일감을 잃고 불안해하던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제 ‘AI로 대체되지 않는 창의성’에 대한 워크숍을 연다.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던 의료 기록사는, 이제 의사와 AI 시스템 사이를 잇는 'AI-인간 중재자'로 훈련받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막막함 끝에서 희미하게 보았던 희망이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인간과 AI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인간과 함께하는 AI’를 선택할 수 있다.
거창한 시작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일 아침, ‘AI를 사용한다’는 말 대신 ‘AI와 함께 일한다’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다리 위를 향한 첫걸음을 떼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