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비추는 한 단어의 여정
글쓰기는 종종 건축에 비유되지만, 내게 글쓰기는 안갯속을 헤매는 일에 가깝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희뿌연 공간.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발밑이 단단한지 허공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 막막함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것은 감각이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는 어떤 감정의 핵, 혹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생각의 실루엣. 나는 그것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간다.
첫 문장은 그 안갯속에 꽂는 하나의 깃발이다. '여기가 시작'이라는 미약한 신호. 하지만 그 깃발 하나로는 부족하다. 길을 내야 한다. 문장을 이어 길을 만들고, 단락을 쌓아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비롯된다.
하나의 단어는 하나의 세계다. 사전적 의미라는 뼈대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억 번 사용하며 남긴 감정의 흔적, 시대의 공기, 문화의 결이 겹겹이 쌓여있다. 작가는 그 거대한 퇴적층 속에서 자신이 찾아 헤매던 바로 그 '결'을 가진 단어를 발굴하는 탐사자와 같다.
예를 들어 '쓸쓸하다'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사전은 '외롭고 적적하다'라고 말하지만, 그 단어 속에는 가을 저녁의 스산한 바람과 텅 빈 방의 그림자가 함께 담겨있다. 만약 내가 표현하려는 감정이 '차가운 고독'이라면 '쓸쓸하다' 대신 '삭막하다'가 더 어울릴 것이고, 그것이 '애틋한 외로움'이라면 '아련하다'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다. 안갯속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다, 마침내 손에 잡힌 단단하고 명확한 실체. 그 단어를 문장 속에 놓는 순간, 주변의 다른 단어들과 공명하며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희미했던 감정의 실루엣이 비로소 뚜렷한 풍경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풍경을 가장 먼저 바라봐주는 이가 바로 편집자다. 작가가 안갯속에서 찾아낸 돌멩이가 보석인지, 혹은 평범한 돌멩이인지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 그가 "이 돌, 빛이 나는군요"라고 말해줄 때, 작가는 비로소 숨을 고르고 다음 돌멩이를 찾아 나설 용기를 얻는다.
글 Atlas
편집 Ly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