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암을 보며, 지질로서의 세상을 보다.
지난 8월 해남에서 지질학 수업을 들었다. 해남에 있는 변성암 지대, 퇴적암 지대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다음 날 공룡박물관으로 향했다. 겹겹이 쌓아 올려진 지층에 있는 공룡의 발자국, 익룡의 발자국, 갑각류의 발자국들을 보았다. 중생대에 살아갔던 생명체들의 흔적을 눈앞에서 본 것이다. 중생대는 크게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나뉘며, 대략 2억 5,3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지질 시대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지층에 쌓인다면, 하나의 얇은 층에 존재할 것이다. 때로는 나의 삶이 참 길게 느껴지지만, 지구와 우주의 입장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이 복잡하고 버거운 모든 일들은 지구의 입장에서 아주 얇은 퇴적층에 존재하게 될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현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른다. 만약 모든 문자와 전기 신호로 기록된 모든 데이터가 사라진다면 현재는 어떻게 유추될까? 플라스틱, 콘크리트, 대량의 소, 돼지 배설물, 유리 등 다양한 것들이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지층에 기록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라고 정의 내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지금까지 지구가 경험한 다섯 번의 대멸종은 우리 사회에서 판타지 같은 시간이다. 인간이 없었으니까. 그 기록은 지층과 빙하에만 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먼 미래의 존재들에게는 현재의 시간이 모두 판타지 같은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고 끝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나에게 ‘기록’에 대한 강박이 있는 듯하다. 매스미디어에서 기록되는 것만 남겨지지 않기를, 작고 소중한 존재들의 기억도 기록되기를 바란다. 이 기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먼 미래에 단 하나의 존재에게 영감을 주기만 해도, 그 모든 수고에 대한 위안은 끝난다.
약 1억 년도 전에 발자국을 찍었을 공룡이, 갑각류가, 익룡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 울림으로 이 거대한 세상을 덜 버겁게 느낄 수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약 1억 년도 전에 살아가던 존재가 현재의 나와 연결된 것이다. 땅 위에 찍힌 발자국 하나로.
하나의 생명체로서, 지구에서 시작해 지구에서 진화한 존재로서, 하나의 동물로서 인간을 느껴 보는 것 어떨까?
동물에 대한 내 생각의 뿌리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자연이 주는 이 영감들의 표출이 누군가에게 ‘동물권 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