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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May 22. 2022

반려동물은 가족이라고요?

가족은 무엇일까

‘가족 같은 회사’ ‘반려동물 가족’ ‘가족 같은 친구’ ‘가족 같은 분위기’와 같은 단어의 조합을 듣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길래, 가족이라는 단어를 이곳저곳에서 사용하는 것일까? 5월은 가족의 달이라고 한다. 5월을 맞이하여 가족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 어떨까?


한국의 근대는 가족과 가족주의의 탄생사였다. 전통적 씨족/친족 가족주의가 새로운 옷을 입고 현대적 핵가족의 가족주의로 탄생, 강화되었다. 가족주의는 차별받던 여성과 하층민의 인정투쟁이었다. 가족주의는 문화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치경제적 현상이자, 한국식 근대의 집약체다.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 | 개인의 보호막과 지위상승의 발판인 가족(김동춘) -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나는 내 자식에게 투자하는 거야”라며 자식이 자신을 부양할 것이기 때문에 적금을 들듯이 자식을 키우는 사람도 있으며,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애틋한 사이지만, 누군가에게 가족은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 가족’ ‘가족 같은 회사’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사회가 가족을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공동체’ ‘공동체성’이라는 개념은 많은 문화권에서 사용되었고 사용되고 있다. ‘공동체’는 언뜻 보면 아름다워 보인다. ‘가족’도 언뜻 보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공동체’ ‘가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너희’가 구분되어야 한다. 가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있어야 한다. ‘ㅇㅇ공동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ㅇㅇ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 너그럽고 ‘너희’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국가 공동체’는 여전히 해당 국가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죽인다. 우리나라도 ‘국가 공동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대부분의 지정 성별 남성들을 군대로 보내 사람 죽이는 법을 연습시킨다. 어쩌면 ‘공동체’는 너무나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죽여도 되는 존재’로 까지 인식하니까 말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내 가족인 반려동물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동물들의 목숨은 소중히 여기지 않기도 한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개고기용 개는 따로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내 가족이 아닌 개’는 죽임당해 먹혀도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길거리를 떠돌던 유기견과 ‘내 가족인 반려견’이 싸웠을 때, ‘내 반려견’만 걱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은 철저히 무시당한다.


‘반려동물은 가족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동물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말에는 ‘가족은 버려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들어있다. 그렇게 되면 ‘가족이 아니면 버려도 되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게 된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해있든 아니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가족이 아니어도 버림받아서는 안 된다.


어떤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모두를 소중히 대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있다는 이유로 ‘너희’가 함부로 대해지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 우리와 너희 모두 행복하길, 더 나아가서 우리와 너희의 구분이 없어지길 바란다.



글쓴이: 이권우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보았고, 동물과 관련된 행사를 여러 차례 기획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한 동물권 단체 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호주에 가서 초원 위 동물들을 만났습니다. 작년 1월 말 한국에 귀국하여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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