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안의 조용한 불균형에 대하여
그냥 묻어갈게요~
발표를 앞두고, 자료를 정리하고, 디자인도 하고, 스크립트도 작성했다.
준비할 내용을 리스트업하고 외부 관계자와 조율한 것도, 마감 시간을 챙긴 것도 나였다.
그런데 동료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앨리카님이 다 해주셔서 저희는 그냥 묻어갈게요~”
정말 농담처럼 들려야 하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웃지 못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흘러갔지만,
그 말은 묘하게 책임과 공기의 무게를 한꺼번에 나에게 얹는 느낌이었다.
프로젝트를 몇 번만 함께 해보면
누가 정말 손을 움직였는지, 누가 그 자리에 마음을 썼는지는 금방 안다.
묻어가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가 해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조용히 비켜 있는 걸 ‘기본값’으로 학습했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제안했다가 갈등이 생기면 어색해질까 봐,
혼자서 하면 부족할까 봐,
기여해봤자 티가 안 날까 봐,
그래서 아예 나서지 않는다.
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이건 단순한 무책임이 아니라, 불안과 피로를 피하는 심리적 전략일 수도 있다.
문제는 묻어가는 사람보다 더 조용히 지쳐가는 건 떠안는 사람이다.
내가 하면 더 빠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분위기 깨기 싫으니까
그래서 그냥 한다.
그러다 보면 ‘일 잘하는 사람’ 또는 '기여자' 아니라 ‘그 일은 원래 그 사람의 것’이 된다.
그리고 반복되면, 그건 역할이 된다.
안하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원래 그건 ○○님이 다 하세요.”
“그분이 알아서 하시겠죠.”
“저는 잘 몰라서요…”
어쩌면 처음엔 묻어가는 사람도 시도했을지 모른다.
도움을 주고 참여하려고 했으나 무시당했거나, 좌절을 겪었거나, 어색했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그냥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쪽으로 적응한다.
반대로 떠안는 사람은 “결국엔 내가 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책임지는 쪽이 낫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성장을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균형은 ‘사람의 성향’처럼 굳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나눠야 할까
진짜 공평한 협업은 일을 딱 잘라 나누는 게 아니라, 책임과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가 떠안고 있다면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묻어가는 사람은 비난당할 때 바뀌지 않는다.
기대받을 때, 역할을 요구받을 때, 변화한다.
이 불균형은,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구조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