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저 행동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반드시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붙이고, 판단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아이의 행동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주관적 해석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말은
부모가 일부러 왜곡한다는 뜻도 아니고,
아이를 잘못 보고 있다는 비난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한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같은 행동도
부모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딴짓을 하고 있을 때를 떠올려 보자.
어떤 부모는 이렇게 생각한다.
“게으르다.”
“책임감이 없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또 어떤 부모는 같은 장면을 보고 이렇게 느낀다.
“지금 많이 지쳤구나.”
“집중할 에너지가 없는 상태구나.”
아이의 행동은 같지만
부모가 붙이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이 차이는
아이의 성향 때문이라기보다
부모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부모의 주관적 세계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주관적 세계란
그 사람이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의 총합이다.
어릴 때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실수했을 때 어떤 반응을 받았는지,
성취와 실패를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불안 속에서 살아왔는지, 비교 속에서 자랐는지.
이 모든 것이
부모 안에 하나의 ‘해석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볼 때
자기도 모르게 그 기준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늘 긴장 속에서 자란 부모는
아이의 느슨한 태도를 위험하게 느낄 수 있다.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올라온다.
반대로
감정이 무시된 환경에서 자란 부모는
아이의 짜증이나 말대꾸를
“버릇없음”으로 바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본다기보다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문제는 이 해석이 반복될 때 생긴다.
부모의 해석은
말과 표정, 태도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
“너는 원래 그래.”
“왜 그렇게밖에 못 하니.”
“또 그러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부모의 해석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배운다.
나는 게으른 아이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나는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
이것은 아이의 성격이 아니라
해석이 만든 자기 이미지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을 때
부모에게 필요한 질문은
“아이를 어떻게 고칠까”보다
이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이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아이의 행동 앞에서
잠시 멈추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선물을 주게 된다.
그 선물은
정답을 알려주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오해하지 않을 가능성이다.
부모의 주관적 해석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각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자각은
아이를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다.
아이의 행동을 통해
아이를 판단하기보다
아이를 이해하려는 쪽으로
부모의 시선을 옮겨 준다.
그 변화는 크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