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록해야하는 이유

정말 잊고싶지않은 것

by 홍D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었다. 그 책은 여행내 들고 다니던 알랭드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었다. 가볍게 읽으려고 제목만 보고 골랐는었는데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단순해보이지만 복잡한 이야기들과 작가의 깊은 사유가 담겨 있었다. 어려운 부분은 앞장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었다.


작가인 알랭드보통이 일주일간 공항에서 숙식하며 관찰하고 느낀 기록이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선 볼 수 없는 관찰자의 눈을 따라 공항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꽤 흥미로웠다. 기내식을 만드는 사람들이야기라든가 공항을 운영하는 사람들, 공항 호텔의 룸서비스를 서빙하는 사람,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들까지 공항의 구석구석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주었다. 기내식을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과정을 통해 나에게 왔을까’, ‘나는 이런 것을 누릴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도 생겼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선조들의 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생각의 회로를 돌려야 하는 이유다.


룸서비스 메뉴만큼 시적인 것이 없다는 이야기에선 웃음이 났다. 햇볕에 말린 크랜베리를 곁들인 연한채소 / 삶은 배, 고르곤졸라 치즈 / 진판델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설탕 절임 호두 마침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의 기내식 메뉴도 비슷했다. 이탈리안 드레싱을 곁들인 모듬 제철 채소 샐러드 / 토마토 밥과 시금치 잎을 곁들인 닭 가슴살 / 간장소스, 피망, 버섯 스튜, 쌀밥을 곁들인 쇠고기 였다.


기내식.jpg 다양한 '시적인' 이름을 가진 기내식들


일등석 손님만 이용할 수 있는 콩코드 룸에 방문했을 때의 일화는 놀라웠다. 이곳에는 가죽 팔걸이의자, 벽난로, 대리석 욕실, 스파, 레스토랑, 관리인, 손톱 손질 전문가, 미용사가 있었다. 웨이터 한 명이 무료 캐비어, 푸어그라, 훈제 연어가 든 쟁반을 들고 라운지를 돌았다. 두 번째 웨이터는 에클레어와 작은 딸기 타르트를 들고 순회를 했다. 작가는 본능적으로 본인은 빠른 시간 안에 이 특별한 룸에 갈 수 없을 거라는 현실에 서글픔을 느꼈다고 한다. 이 라운지는 족벌 등용과 다양한 속임수 덕에 자격도 없으면서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일 거라는 증오심 가득한 눈으로 살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부자들은 무언가 부정하고 운 좋게 부를 누린다고 생각했으나 우리 사회가 풍족한 것은 부자들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통념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는 능력주의 사회처럼 보이지만 왜 여전히 ‘나’는 콩코드 룸에 들어갈 수 없는지는 모든 이코노미승객들이 복잡하고 과밀한 공용대합실의 딱딱한 의자에서 생각해 볼 난제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운동복 차림의 스물일곱 살짜리 기업가와 퍼스트클래스 라운지의 욕실을 돌아다니며 샤워부스에서 늘 변하는 다양한 국제적 박테리아를 닦아내는 일을 하는 필리핀 청소부 사이의 지위의 상대적 관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내가 사는 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명언은 소름끼치는 조언인 셈이다.


여행자에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보다 ‘무엇을 바꾸고 싶으신가요?’라는 물음이 더 지혜로울 수 있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여행을 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 바꾸고 싶은 사람이다. 답답한 현실일 수도 있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테다.


책의 말미에 나의 여행과 상통하는 내용이 있었다.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잊고 싶지 않지만 결국엔 잊게 되어 있다. 오래 간직하려면 써야한다. 세세하고 시시콜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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