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투성이 여행자
발레타 골목을 하루종일 걸었다. 허기를 느낀 것은 오후 다섯 시가 넘었을 때였다. 8시쯤 호텔 조식을 먹었고 11시쯤 카페에서 차와 까놀리를 먹었다. ‘금강산도식후경‘이라는데 나는 발레타 골목에 취해 밥 때도 잊었다.
여행을 오기 전 유일하게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었다. 몰티즈들의 전통 음식, 래빗스튜다. 예로부터 섬나라인 몰타에선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들은 비교적 기르기 쉬운 토끼를 키워 요리해 먹었다. 여행 정보 사이트에서 정말 맛있었다고 추천한 식당에 가보고 싶었다. 식당 이름은 Palazzo Preca Restaurant였다. 발레타에 있었다. 몰타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장소로 딱이였다.
미리 구글지도에 표시해 둔 덕에 식당을 찾기 쉬웠다. 문제는 식당문이 굳게 닫혀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골목의 다른 가게들은 한창 야외테이블까지 내놓고 운영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옆 골목을 기웃거리는 데 한 여인이 앞을 막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무릎 길이의 청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는 메뉴판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메뉴판을 펼쳐보이며 우리 가게에서 ‘래빗스튜’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적극적인 호객행위에 낚였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Loop Bistro Bar’의 야외 테이블, 빨간색 의자에 앉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래빗 스튜와 치스크 한 잔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먼저 나온 치스크를 들이켰다. 쌉싸름한 향이 메말랐던 목구멍을 타고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금세 얼굴이 벌개졌다.
잠시 후, 래빗스튜가 나왔다. 상상속 스튜의 모습은 빨갛거나 하얗고 큰 감자가 든 것이었다. 내 앞에 놓인 래빗스튜의 생김새는 상상ㅅ과 달랐다. 노란 카레소스가 먼저 눈에 띄었고 닭고기처럼 보이는 토끼고기위에 잘게 잘린 당근, 감자, 콩 등 섞여 있었다. 맨 위에는 하얀 치즈가 눈처럼 쌓여 있었다. 사이드 메뉴로 감자튀김도 나왔다.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카레의 향과 함께 고기의 식감이 느껴졌다. 토끼 고기는 닭고기보다 조금 질겼다. 씹을 때마다 특유의 비릿한 맛이 났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지만 포크가 자꾸 당근과 감자와 콩으로 향했다. 카레소스는 태국 소스맛이 났는데, 토끼 고기를 빼고 공기밥 한 공기를 비벼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리 안의 야채와 치즈, 사이드 메뉴로 나온 감자튀김을 싹 비웠다. 토끼고기만 남았다. 더이상은 힘들었다. 남은 접시를 앞에 두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자 서빙을 해 준 직원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Good이라고 답해주었다. 미묘한 맛과 냄새 때문에 못 먹겠다고 자세히 설명하기엔 짧은 영어탓도 있었지만, 그들의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것이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골목을 나와 원래 가려던 식당 앞을 지났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소문난 맛집이 맞는지 테이블마다 손님이 꽉 찼다. 아쉬운 마음에 가게 주변을 서성이며 다시 시도해 볼까? 하는 욕구가 치솟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진짜 맛있는 래빗 스튜는 다음으로 남겨두자. 그런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를 타고 건너편 슬리에마에 있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에 걸려, 마지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빨갛고 노랗게. 숙소에 들어가기 전 젤라또 가게에 들렀다. 메론맛 젤라또를 한껏 베어물었다. 비릿한 토끼고기의 맛이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