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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Jan 11. 2022

우정과 경쟁사이

우리가 캐나다로 떠날  같이 유학길을 동행한 가족이 있다. 서울에서   같은  1,2호로 우리는 서로 이웃집이었다. 내가 하원길에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어디 갔는지 아무도 문을  열어준다. 한참을 복도에서 울고 있으니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 자기 집에서 기다리라며 나를 안으로 인도했다. 그것을 계기로  가족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옆집도 아이가 둘이었는데 언니와 동갑인 오빠 한 명과 나보다 어린 여동생이었다. 이렇게 두 가족은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같이 밴쿠버로 떠났다. 캐나다에서도 거의 맨날 만나다시피 하며 왕래를 했고 엄마들끼리 같이 한인마트 가서 한국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거실에서 함께 시청하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어떤 한국 것도 보지 못하게 했던 엄마는 방에 있으라 했지만 문 틈 사이로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몰래 훔쳐보고는 했다. 그중, ‘보고 또 보고’의 김지수 씨가 우는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뭔가 굉장히 억울한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언니와 그 오빠는 동갑이기도 해서 그런지 많이 싸웠다. 싸우다가 언니가 맞고 온 날이면 엄마는 속상해서 “맞지만 말고 너도 같이 때리던지 아님 말로 싸우던지 해!”라고 말했다. 언니도 질 성격이 아니라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어느 날, 그 오빠 집에 놀러 가서 놀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고 있는데 어김없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함께 “너네 그만해!” 소리를 지르며 언니와 그 오빠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그 오빠가 아주머니를 노려보며 소리친다.


“엄마가! 얘 쥬디한테는 절대 지지 말라며!!”


“어머! 내가 언제 그랬어!!” 아주머니가 당황하며 빨개진 얼굴로 오빠를 나무란다.


엄마가. 다른 사람한테는. 져도. 쥬디. 한테는. 지지. 말라며!”


그때부터 어색한 수습이 시작된다. 엄마는 언니를 싸운다며 혼내고 그 아주머니도 오빠를 혼낸다. 어린 내가 느껴질 만큼 어색하고 찝찝한 이 기류가 흐른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느낀다.


엄마도 나이가 같고 똑같은 시기에 유학을 시작한 그 오빠와 언니를 자주 비교했다. 영어는 누가 더 빨리 늘고 있는지, 학교에서 학습은 누가 더 잘 따라가는지 꽤 신경 쓰는 게 보였다. 만났을 때는 웃으며 동질감을 느끼고 정보를 교환하며 외로움을 달래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를 향한 경쟁심으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다 큰 내가 언니나 남편에게도 그때를 회상하며 자주 이야기하는 것 보면 단순히 찝찝했던 그 상황이 각인돼서 뿐만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중성을 ‘날 것’ 그대로를 경험한 어떠한 충격 때문인 것 같다.


관계는 한 겹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평소에 꽤 괜찮게 생각한 친구가 인스타에 올리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보고 있으면 괜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학창 시절도 우정을 논하는 친구와도 내 성적에 영향을 주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에서 ‘순수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일지 모른다.


아이랑 하원길에 차 안에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뉴욕 형아는 내 친구 시우 알아?”


“아니. 만난 적이 없으니까 모르지. 왜?”


“형아 데리고 시우 집에 놀러 갈래. 형아가 시우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내가 형도 사랑하고 시우도 사랑하잖아. 히히히”


그때, 나는 아이에게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과 친해졌으면 좋겠는 마음. 사랑했으면 좋겠는 마음. 내가  사랑하는지 알기 바라는 마음. 아이의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에  스스로 반성하며 그런 마음을 잃어버린  자신이 부끄럽다. 아이가 나에게 우정을, 사랑하는 마음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서 절대 지지 말라고 어른이 말할 때, 그때 조금씩 혼란스러움을 안고 순수했던 사랑이, 우정이 조금씩 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은 망쳐놓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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