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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Feb 21. 2022

김밥과 샌드위치 사이

초등학생인 나는 친구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노력한다. 문화, 언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티비를 보면 멋지고 예쁜 가수나 배우들은 모두 푸른 눈과 높은 코를 가진 백인이었고 동양인은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보는 잡지나 카튠  모든 가정도 우리 집과는 모습이 많이 달랐다.


엄마와 언니랑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장을 보러 나가고는 했는데 엄마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소리로 한국말로 이야기한다.


“딸. 오늘 뭐 사갈까?”


언니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창피하다는 표정을 공유한다. 카트를 밀고 지나가는 백인 아줌마들의 표정을 살핀다. 괜히 시끄럽게 느껴질 것만 같아 엄마에게 눈치를 준다.


“Mom!!! Don’t speak Korean!”


“뭐? 뭐라고?”


“Mom! Don’t speak Korean! 한국말하지 마.”


그렇게 이야기하고 언니랑 둘이 팔짱을 끼고 다른 열로 툴툴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도망가듯 가버렸다. 이리 오라고 말할 법도 한데 엄마는 우리의 불만이 접수되었는지 가만히 지켜보며 서있다. 한참 장을 보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엄마가 가만히 서서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어머, 내가 과자 한 개 샀는데 두 개로 계산이 되었다. 딸, 가서 이거 하나인데 잘 못 계산한 것 같다고 좀 말해봐 봐.”


간단한 의사소통은 능숙한 엄마이지만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우리에게 부탁하게 된다. 엄마는 복잡한 일을 해결할 때면 이야기 상대의 답답해하는 표정과 기다리다 뾰로통해진 두 딸의 기분을 맞추느라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래서 집주인한테 수리해달라고 이야기할 때도 우리 몫이고 관공서 가서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어리고 철이 안 든 나는 그저 이렇게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게 귀찮아서 금세 짜증이 나고 만다. 하지만 엄마가 가서 천천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가 길어질게 뻔하다. 그래서 투덜거리면서도 언니와 나는 가위바위보로 누가 이야기하러 갈지를 정한다.


엄마가 아침마다 해주는 한국음식도 괜히 학교 가서 마늘, 간장 냄새가 날 것 같아 먹기가 싫다.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상시 껌을 한두 개 입 속에 집어넣고 얼른얼른 씹어 한국 냄새를 지운다. 이런 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은 언니뿐이다.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할 수 없는 큰 비밀이며 엄마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버릇없다고 혼을 낼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처럼 샌드위치를 싸 달라고 부탁한 나는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지만 사실 밥 다운 밥 같지 않아 배도 부르지 않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해주는 불고기덮밥을 먹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엄마의 어떤 부탁은 귀찮기도 하고 어떤 상황은 부끄럽고 짜증 나기도 하지만 어느새 엄마를 쳐다보며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엄마의 음식과 언어를 부끄러워하는 못된 딸이라는 생각이 마음속 한 곳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마음을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느껴진다. 내가 좋다가도 싫다.


다 커버린 언니와 나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나는 한국에 살고 언니는 뉴욕의 맨해튼 한복판에 살고 있다. 언니가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어 자주 뉴욕에 들리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조카를 관찰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맨해튼에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과 언어가 동시에 공존한다.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그들만의 새로운 생태계와 질서를 만든다. 그렇기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이 빌딩 정글 사이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기도 하지만 이 다양성 속에 있다 보면 편견, 차별과 선입견에서 더 자유롭다.


며칠 전에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부엌에서 분주한 모습이다.  때문에 그리 바쁜지 물어보니 조카 학교에서 ‘International day’ 하는 날이다. 각자 문화의 음식을 반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먹어보는 시간이다. 언니는 반 친구들을 위해 김밥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위에 조그마한 이쑤시개를  삼아 태극기를 작게 오려 꽂아 놓았다. 그런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김밥은 인기가 좋았다며 조카가 나에게 자랑스럽게 며칠 뒤 이야기했다.


90년대의 한 캐나다 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와는 다르게 2020년대를 살고 있는 내 조카는 한 명 한 명 고유한 색깔을 지닌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스스로 개척 중이다. 모두가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니고 표현하며 서로 존중과 자부심을 느낀다. 때로는 사람들의 가치의 변화와 사회의 진보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아 한없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금의 조카와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세상은 진보해가고 있다. 느린 듯 빠른 듯 이 지구는 80억 명의 공동체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삐그덕거리며 진보한다.

조카의 인터네셔널 데이의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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