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정에서 실수, 잘못, 사과, 용서의 상황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용서를 받아야 할까. 누구를 용서해야 할까. 나는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떠오르고 잊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과연 용서는 가능한 것일까.
용서하면 나는 늘 영화 밀양이 떠오른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찾아간다. 살인범은 그곳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은 너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마음이다. 나의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내가 용서할 수가 있을까.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어려울 것 같다. 그래 억지로 용서까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달랐다. 진짜였다. 나 같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떠드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이 총살당해 죽었다.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범인이 잡혔다. 목사님은 범인을 보고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저 사람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리고 살인범이 처형당하기 전에 그를 양자로 삼아 같이 살았다고 한다.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실화이다. 두 이야기 모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다툼을 하면 선생님은 둘을 불러 서로 화해를 시킨다. 먼저 “미안해.”라고 하면 사과를 받은 아이는 ”괜찮아. “라고 조건반사처럼 대답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숲유치원에 다녀서 매일 등원하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야외학습장에서 있다가 바로 산에 오른다. 완만한 산이 절대 아니다. 나도 한번 가봤는데 끝없는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었다. 그렇게 이름만 숲유치원이 아닌 곳이었다. 선생님들도 6,7세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주셨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무슨 일로 사과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날 신랑이 1호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용서를 구했다. 늘 조건반사처럼 "괜찮아."를 말하던 아이가 갑자기 "안 괜찮아. 지금은 그럴 마음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대화를 해보니, 유치원 선생님께서 너무 속상하고 괜찮지 않으면 "안 괜찮아."라고 말해도 된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마음이 풀어지면 그때 사과를 받아주라고 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아이와 감정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반대 입장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친구엄마도 갑자기 아이가 ”안 괜찮다 “고 하며 용서를 안 해준다고 당황하여 연락이 왔다. 웃기지만 웃기지만은 않은 에피소드였다. 이후 아이가 한동안 "안 괜찮아."를 자주 했었다.(웃음)
나는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어서 빨리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인간관계를 넓게 하지 않고 삶의 큰 어려움이 없었던 편이라 뭐 크게 용서해야 할 일 자체가 거의 없긴 했다. 그래도 한동안 좀 오래간 적이 있었는데 20대에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이런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내가 용서하지 않은 그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이다. 내가 아직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죽은 것이다. 용서할 기회조차 없어진 상황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정말 힘들었다. 그런 꿈을 꾸고 깨닫게 된 것에 감사했다. 용서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쉽고도 어려운 일 같다. 나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겠지만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인간이 되고 싶다.